레이디경향 입력 2015.04.09 14:30
최근 우리나라 아이들의 학업 스트레스가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유엔아동기금(UNICEF)이 2013년 발표한 '부유한 국가 아동의 주관적 웰빙' 조사 지표를 바탕으로 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아동들의 학업 스트레스 지수는 50.5%로 조사 대상국 29개국 중 최고였다. 반면 학업 스트레스 지수가 가장 낮은 나라는 네덜란드(16.8%), 프랑스(20.8%), 독일(23.9%)이었다. 물론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경쟁적인 한국 교육의 대칭점에 있는 세 나라의 교육 현주소를 짚어봤더니 시사점이 크다.
네덜란드
만 4세부터 초등학교 시작
네덜란드의 초등학교는 총 8년 과정이다. 만 4세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데 유아 교육이 초등 교육과 분리되지 않고 연계돼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만 4세 생일이 지나면 각자 입학하기 때문에 단체 입학식이 없는 것도 특징이다. 초등학교는 학생의 수준에 맞게 수준별 교육, 과목별 이동 수업이 이뤄지고 유급과 월반 제도가 있다. 개개인의 학업 성취도에 따라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초등학교 졸업 시험 결과에 따라 3등급으로 나눠진 중·고등학교로 진학한다. 인문계 중·고등학교는 6년 과정, 상위 보통중고등학교는 5년 과정, 중·하위 직업중고등학교는 4년 과정으로 이뤄져 있다.
성적보다 중요한 학교생활 태도
초등학교부터 유급 제도가 있어 아이들마다 졸업 시기가 다를 수 있다. 수업 과정을 따라오지 못해 유급되기도 하지만 친구들과의 관계, 교사와의 친화력 등 사회적 태도도 유급의 중요한 기준이다. 학교가 성공적인 사회생활의 마중물 역할을 한다고 여기기 때문에 그 기초를 잡아주기 위함이다. 초등학교에서는 1년간의 시험 점수를 합쳐 대다수 과목이 10점 만점에 6점을 넘지 못할 때 이해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고 유급을 권한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이를 창피해하지 않는다. 유급을 해서 제대로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 자연스레 받아들인다. 하지만 학교생활 태도에 문제가 있는 경우는 교사의 유급 결정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 공부 성적과 인성 중 어떤 것을 더 중요하게 평가하는지 드러나는 대목이다.
'학원'이란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라
네덜란드는 사교육이란 개념조차 없는 철저한 공교육의 나라다. 학교 수업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좀 더 공부하고 싶으면 도서관에서 관련 서적을 빌려보는 정도이고, 그것이 당연시되는 분위기다.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보습학원이나 과외를 하는 곳이 없고, 초등학생들은 교과서를 학교에 두고 다니기 때문에 예습, 복습을 시켜야 한다는 개념도 없다. 사교육 기관이 없는 것은 중·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사교육이 없는 이유는 모든 학생들이 대학 입학을 향해 달려가는 사회가 아니기 때문. 실제로 전체 국민의 15% 정도만이 대학에 진학한다.
예외적으로 사교육이 있는 분야가 있다. 예체능이다. 시에서 운영하는 '뮤직스쿨'에서 피아노, 바이올린 등 악기 연주 및 무용, 그림 등 예능 분야를 가르친다. 부모의 소득 수준에 따라 수업료가 책정되는데, 저소득층에는 아주 저렴한 수업료만 부과되며 나눠 낼 수도 있기 때문에 예체능 사교육을 시킨다 해도 사교육비 부담은 거의 없다. 네덜란드 부모들에게 중요한 사교육은 스포츠다. 대부분 아이들은 스포츠 클럽에서 한 종목 이상의 스포츠를 배운다. 이 또한 비용이 아주 저렴해 돈이 없어 스포츠를 즐기지 못하는 아이는 거의 없다. 그러나 이런 예체능 분야 사교육도 철저히 취미 측면에서 시키는 것이지, 남들이 다 하니까 우리 아이도 해야 한다는 '휩쓸리기식'의 사교육은 아니다.
왜 모두가 대학에 가야 하지?
네덜란드 부모들에게는 자녀의 대학 입학이 최고의 목표가 아니다. 모든 사람이 공부를 잘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다. 무조건 대학에 진학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성적을 더 올리라며 다그치지 않는다. 물론 자녀가 공부를 잘해 대학에 합격하면 기뻐하고 축하해준다. 타고난 재능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아이가 공부 외의 다른 재능을 보이면 일찌감치 그 재능을 키울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이 이들의 교육 태도다.
주한 네덜란드 부대사인 마르요 크롬푸츠씨는 "네덜란드 부모들은 자녀가 평균 수준의 성적을 받는 것에 만족하며 시험 점수가 10점 만점에서 6점이 나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긴다"라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 네덜란드의 초·중·고를 통틀어 중간 점수대의 학생은 전체 학생의 70~80%를 차지한다고. 이런 태도는 네덜란드 사회 분위기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이다. 네덜란드인들은 머리로 일하는 사람과 기술로 일하는 사람이 골고루 필요하다고 여긴다. 모두 학문을 연구하기만 한다면 누가 집을 짓고 도로를 청소하고 빵을 만드느냐고 반문하며 모든 직업을 존중하는 것. 실제로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 기반이 마련돼 있기 때문에 '교육 광풍'이 없는 것이다.
Profile 도움말을 준 정현숙씨는…
네덜란드에서 10년간 세 아이를 키운 엄마로 현재 큰아들은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 법학과에, 작은아들은 인문계 중·고등학교에, 막내딸은 현지 초등학교를 거쳐 현재 한국에서 중학교에 다니고 있다. 네덜란드의 교육 현실에 대해 직접 보고 겪은 생생하고 사실적인 리포트를 알토란처럼 엮어 「공교육 천국 네덜란드」를 펴냈다.
프랑스
준비 학년부터 시작하는 초등학교
기본 학제는 초등학교 5학년, 중학교 4학년, 고등학교 3학년으로 이뤄져 있다. 만 6세인 1학년은 준비 학년으로 다음해부터 있을 본격적인 공부를 잘 이해하기 위한 과정으로 이뤄진다. 우리나라로 치면 유치원 교육과 초등학교 교육이 유기적으로 연계돼 있는 셈이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위한 월반 제도가 있고, 수업을 잘 따라오지 못하는 학생들에게는 1년을 더 연장해주는 제도도 있어 학생별 이해 능력에 따라 교육이 이뤄진다. 중학교 3학년 때 성적과 학생의 희망에 따라 진로를 결정짓고 이후부터는 공부를 계속할 것인지, 직업 자격증을 취득할 것인지에 따라 필요한 교육을 받는다.
서열을 매기는 상대평가 없다
프랑스 초등학교의 성적표에는 등수가 없다.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를 적용해 A, B, C, D 식으로 등급이 표기된다. 물론 이것은 본인만 알 수 있으며, 아이들은 친구들과 경쟁한다는 느낌을 받지 않는다. 한국처럼 시험공부에 매달려야 하는 시험 기간이 따로 없고, 평소에 수시로 간단한 과목별 평가 시험을 보는 편이다. 시험을 자주 본다니 한국의 관점에서 보면 시험 스트레스가 더 클 것 같지만, 프랑스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는 물론 고등학교에 가서도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가 별로 없다고 말한다. 공부에 매달리는 학생은 계속해서 학문을 연구하고 대학에 입학하길 희망하는 소수의 아이들뿐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자율적인 선택에 의한 공부이기 때문에 경쟁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극히 적다.
스포츠 클럽이 유일한 사교육
프랑스 역시 사교육의 개념이 없다. 한국처럼 학교 과목을 따로 더 공부하거나 선행학습을 위한 학원은 찾아보기 어려우며, 프랑스인들은 그런 종류의 사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학원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아이들이 모여서 운동을 즐기는 스포츠 클럽뿐이다. 대다수의 아이들이 이런 클럽에 다니며 신체 활동을 즐기고 취미 활동을 한다. 학원에 다니지 않다 보니 방과 후에도 시간적 여유가 많기 때문에 아이들끼리 서로의 집을 방문하거나 공원에 가서 함께 어울려 노는 시간이 많다.
정답이 아닌 생각이 중요한 사회
프랑스 사회는 전인교육을 중시해 개개인이 가진 다양한 특성과 자질을 살려주는 교육 방식을 추구한다. 또 '생각하는 시민'을 길러내는 것이 프랑스 사회가 지향하는 교육의 큰 목표다. 프랑스 교육을 상징하는 것 중 대표적인 것이 대입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 시험이다. '과거를 망각하면서 현재를 이해할 수 있을까?', '철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사랑이 의무일 수 있는가?' 등 바칼로레아에 출제된 문제만 봐도 프랑스 사회가 추구하는 교육이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 출제된 문제는 프랑스 전 사회의 이슈가 돼 TV 토론회 등이 등장한다. 합격자는 수험생의 80% 이상, 20점 만점에 10점 미만자에게는 재시험의 기회를 줘 합격률을 높이려 한다. 못하는 학생을 가려내려는 것이 목적이 아닌, 더 많은 이에게 공부의 기회를 제공하려는 것이다.
또 프랑스인들은 책상 앞에서 책을 파는 것만 공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평소 가족이 모두 모여 식사 시간에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는 것이 보편적인 문화다. 프랑스에서 초등학교를 다닌 김정서씨는 "프랑스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과 다양한 주제로 활발하게 대화를 나누기 때문인지 사고방식이 일찍부터 성숙해지는 것 같다"라고 전한다. 실제로 학교 교육도 논리적 사고력과 표현력을 중요시한다. 정답을 찾는 것이 중요한 한국의 교육과 자신의 생각을 쓰는 것이 중요한 프랑스의 교육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프랑스에서 초등학교를 다녔으며 현재는 서울대학교 산림과학과에 재학 중이다. 프랑스와 한국의 교육을 모두 경험한 입장에서 프랑스에서는 공부 스트레스를 거의 느끼지 않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 수 있는 시간이 많았던 반면, 한국에서는 친구들이 모두 학원에 가느라 함께 놀 수 없었던 것이 가장 적응하기 힘들었다고 꼽는다.
독일
초등학교 4학년 때 진로 결정
독일의 초등학교는 4학년까지다. 중·고등학교는 학교에 따라 8~9학년으로 이뤄져 있다. 원래 9학년까지였는데 8학년으로 변경됐다가 학생들이 극심한 스트레스에 노출된다는 반발이 거세지면서 다시 학교에 따라 8~9학년으로 변경됐다. 독일 교육제도의 특이한 점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아이들의 진학 계획이 결정된다는 점이다. 4학년 중간 성적표가 나오면 학업 능력과 적성을 바탕으로 어느 학교에 진학할 것인지를 정하는데, 고등학교에 진학할 학생과 실업학교 등에 진학할 학생으로 나뉜다. 너무 일찍 아이의 진로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지만, 자신의 길을 빨리 정하는 독일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 교육 정책이다.
필기시험만큼 중요한 평소 수업 태도
초등학교의 성적은 필기시험 점수가 50%, 수업 중 발표하기 등 수업 태도가 50%를 차지한다.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성적표에 점수가 기재되지 않고 문장으로 된 성적표가 나온다. 2학년부터는 점수가 있는 성적표가 나오며 과목 점수 외에 공부하는 태도, 사회적인 태도에 관한 점수가 표시된다. 그만큼 아이들의 공부 자세와 평소 학교생활 태도를 중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아무리 과목 성적이 좋다고 해도 이 점수가 나쁜 학생은 초등학교 졸업 뒤 진학할 수 있는 학교를 찾기가 힘들어진다.
한국 같은 과외 열풍은 없다
독일에도 사교육이 있긴 하다. 최근 들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그렇다 해도 전문 선생님을 고용해 고액 과외를 시키는 한국의 사교육과는 차이가 큰,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독일의 학교는 낙제 제도가 있는데, 학생이 낙제할 가능성이 크다 싶을 때 중·고등학교부터 개인과외를 하는 편으로 조금 위 학년의 학생들에게 과외를 받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렇게 과외를 받는 게 일반적인 것은 아니며 대부분은 학교의 지원 수업을 통해 각자 부족한 부분을 채워간다. 독일의 초등학교에서는 수업을 잘 따라오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집중 교육을 실시한다. 학교에서 무료로 해주는 과외 수업인 셈이다. 독일어, 책 읽기 등 공부 과목뿐 아니라 운동까지 지원 수업을 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변화 추세, 그래도 한국보다는 덜 경쟁적
최근 독일의 교육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는 추세다. 출산율이 줄면서 1~2명의 자녀만 키우는 가정이 늘어났는데, 그러다 보니 '하나밖에 없는' 자녀에게 많은 지원을 하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는 것. 그래서 요즘에는 자녀를 직업학교가 아닌 고등학교(김나지움), 대학교에 보내고 싶어 하는 부모가 많아졌다고 한다. 점점 고학력을 추구하는 분위기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등학교가 9학년제에서 8학년제로 바뀐 것도 사회적인 이슈로 떠올랐는데, 8학년으로 과정이 줄면서 아이들의 공부 스트레스가 과도해졌다는 뉴스가 매스컴을 장식하기도 했다. 현재는 아직 8학년을 고수하는 학교가 더 많지만 거센 비난 여론에 다시 9학년으로 바꾼 학교들도 있다.
이런 일련의 사회적 변화 때문에 요즘 독일 아이들의 스트레스가 예전에 비하면 조금 늘었다는 의견이 많지만 독일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 엄마들은 "그래도 한국과 비교하면 훨씬 스트레스가 적다"라고 입을 모은다. 더구나 이런 스트레스도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만 느끼는 것이지, 실업학교 등 다른 진로를 택한 학생들은 과도한 공부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모든 학생들의 스트레스가 늘어난 것은 아니다. 또 독일 부모들은 최근 들어 고학력을 추구하고 있긴 하지만 자녀가 잘 적응하지 못한다는 판단이 들면 억지로 공부하도록 하기보다는 빨리 욕심을 버리고 적성에 맞는 진로를 모색하는 분위기라고.
Profile 도움말을 준 김영희씨는…
독일에서 초등학교 2, 3학년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주부. 독일에서 사회학을 전공했으며 오래전부터 유럽의 교육제도에 대해 관심이 많다. 독일의 소식을 전해준다는 의미의 '독일벨이'란 닉네임으로 자신의 두 번째 고향인 독일의 교육, 생활, 사회 이슈 등을 전달하는 블로그(blog.naver.com/germanlife14)를 운영하고 있다.
<■기획 / 장회정 기자 ■글 / 정성민(프리랜서) ■사진 / 송미성(프리랜서), 경향신문 포토뱅크 ■사진 제공 / 김정서, 정현숙 ■도움말 / 김영희, 김정서, 에듀프랑스유학, 정현숙>
만 4세부터 초등학교 시작
네덜란드의 초등학교는 총 8년 과정이다. 만 4세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데 유아 교육이 초등 교육과 분리되지 않고 연계돼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만 4세 생일이 지나면 각자 입학하기 때문에 단체 입학식이 없는 것도 특징이다. 초등학교는 학생의 수준에 맞게 수준별 교육, 과목별 이동 수업이 이뤄지고 유급과 월반 제도가 있다. 개개인의 학업 성취도에 따라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초등학교 졸업 시험 결과에 따라 3등급으로 나눠진 중·고등학교로 진학한다. 인문계 중·고등학교는 6년 과정, 상위 보통중고등학교는 5년 과정, 중·하위 직업중고등학교는 4년 과정으로 이뤄져 있다.
성적보다 중요한 학교생활 태도
초등학교부터 유급 제도가 있어 아이들마다 졸업 시기가 다를 수 있다. 수업 과정을 따라오지 못해 유급되기도 하지만 친구들과의 관계, 교사와의 친화력 등 사회적 태도도 유급의 중요한 기준이다. 학교가 성공적인 사회생활의 마중물 역할을 한다고 여기기 때문에 그 기초를 잡아주기 위함이다. 초등학교에서는 1년간의 시험 점수를 합쳐 대다수 과목이 10점 만점에 6점을 넘지 못할 때 이해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고 유급을 권한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이를 창피해하지 않는다. 유급을 해서 제대로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 자연스레 받아들인다. 하지만 학교생활 태도에 문제가 있는 경우는 교사의 유급 결정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 공부 성적과 인성 중 어떤 것을 더 중요하게 평가하는지 드러나는 대목이다.
네덜란드는 사교육이란 개념조차 없는 철저한 공교육의 나라다. 학교 수업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좀 더 공부하고 싶으면 도서관에서 관련 서적을 빌려보는 정도이고, 그것이 당연시되는 분위기다.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보습학원이나 과외를 하는 곳이 없고, 초등학생들은 교과서를 학교에 두고 다니기 때문에 예습, 복습을 시켜야 한다는 개념도 없다. 사교육 기관이 없는 것은 중·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사교육이 없는 이유는 모든 학생들이 대학 입학을 향해 달려가는 사회가 아니기 때문. 실제로 전체 국민의 15% 정도만이 대학에 진학한다.
예외적으로 사교육이 있는 분야가 있다. 예체능이다. 시에서 운영하는 '뮤직스쿨'에서 피아노, 바이올린 등 악기 연주 및 무용, 그림 등 예능 분야를 가르친다. 부모의 소득 수준에 따라 수업료가 책정되는데, 저소득층에는 아주 저렴한 수업료만 부과되며 나눠 낼 수도 있기 때문에 예체능 사교육을 시킨다 해도 사교육비 부담은 거의 없다. 네덜란드 부모들에게 중요한 사교육은 스포츠다. 대부분 아이들은 스포츠 클럽에서 한 종목 이상의 스포츠를 배운다. 이 또한 비용이 아주 저렴해 돈이 없어 스포츠를 즐기지 못하는 아이는 거의 없다. 그러나 이런 예체능 분야 사교육도 철저히 취미 측면에서 시키는 것이지, 남들이 다 하니까 우리 아이도 해야 한다는 '휩쓸리기식'의 사교육은 아니다.
왜 모두가 대학에 가야 하지?
네덜란드 부모들에게는 자녀의 대학 입학이 최고의 목표가 아니다. 모든 사람이 공부를 잘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다. 무조건 대학에 진학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성적을 더 올리라며 다그치지 않는다. 물론 자녀가 공부를 잘해 대학에 합격하면 기뻐하고 축하해준다. 타고난 재능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아이가 공부 외의 다른 재능을 보이면 일찌감치 그 재능을 키울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이 이들의 교육 태도다.
주한 네덜란드 부대사인 마르요 크롬푸츠씨는 "네덜란드 부모들은 자녀가 평균 수준의 성적을 받는 것에 만족하며 시험 점수가 10점 만점에서 6점이 나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긴다"라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 네덜란드의 초·중·고를 통틀어 중간 점수대의 학생은 전체 학생의 70~80%를 차지한다고. 이런 태도는 네덜란드 사회 분위기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이다. 네덜란드인들은 머리로 일하는 사람과 기술로 일하는 사람이 골고루 필요하다고 여긴다. 모두 학문을 연구하기만 한다면 누가 집을 짓고 도로를 청소하고 빵을 만드느냐고 반문하며 모든 직업을 존중하는 것. 실제로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 기반이 마련돼 있기 때문에 '교육 광풍'이 없는 것이다.
네덜란드에서 10년간 세 아이를 키운 엄마로 현재 큰아들은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 법학과에, 작은아들은 인문계 중·고등학교에, 막내딸은 현지 초등학교를 거쳐 현재 한국에서 중학교에 다니고 있다. 네덜란드의 교육 현실에 대해 직접 보고 겪은 생생하고 사실적인 리포트를 알토란처럼 엮어 「공교육 천국 네덜란드」를 펴냈다.
프랑스
준비 학년부터 시작하는 초등학교
기본 학제는 초등학교 5학년, 중학교 4학년, 고등학교 3학년으로 이뤄져 있다. 만 6세인 1학년은 준비 학년으로 다음해부터 있을 본격적인 공부를 잘 이해하기 위한 과정으로 이뤄진다. 우리나라로 치면 유치원 교육과 초등학교 교육이 유기적으로 연계돼 있는 셈이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위한 월반 제도가 있고, 수업을 잘 따라오지 못하는 학생들에게는 1년을 더 연장해주는 제도도 있어 학생별 이해 능력에 따라 교육이 이뤄진다. 중학교 3학년 때 성적과 학생의 희망에 따라 진로를 결정짓고 이후부터는 공부를 계속할 것인지, 직업 자격증을 취득할 것인지에 따라 필요한 교육을 받는다.
프랑스 초등학교의 성적표에는 등수가 없다.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를 적용해 A, B, C, D 식으로 등급이 표기된다. 물론 이것은 본인만 알 수 있으며, 아이들은 친구들과 경쟁한다는 느낌을 받지 않는다. 한국처럼 시험공부에 매달려야 하는 시험 기간이 따로 없고, 평소에 수시로 간단한 과목별 평가 시험을 보는 편이다. 시험을 자주 본다니 한국의 관점에서 보면 시험 스트레스가 더 클 것 같지만, 프랑스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는 물론 고등학교에 가서도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가 별로 없다고 말한다. 공부에 매달리는 학생은 계속해서 학문을 연구하고 대학에 입학하길 희망하는 소수의 아이들뿐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자율적인 선택에 의한 공부이기 때문에 경쟁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극히 적다.
스포츠 클럽이 유일한 사교육
프랑스 역시 사교육의 개념이 없다. 한국처럼 학교 과목을 따로 더 공부하거나 선행학습을 위한 학원은 찾아보기 어려우며, 프랑스인들은 그런 종류의 사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학원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아이들이 모여서 운동을 즐기는 스포츠 클럽뿐이다. 대다수의 아이들이 이런 클럽에 다니며 신체 활동을 즐기고 취미 활동을 한다. 학원에 다니지 않다 보니 방과 후에도 시간적 여유가 많기 때문에 아이들끼리 서로의 집을 방문하거나 공원에 가서 함께 어울려 노는 시간이 많다.
정답이 아닌 생각이 중요한 사회
프랑스 사회는 전인교육을 중시해 개개인이 가진 다양한 특성과 자질을 살려주는 교육 방식을 추구한다. 또 '생각하는 시민'을 길러내는 것이 프랑스 사회가 지향하는 교육의 큰 목표다. 프랑스 교육을 상징하는 것 중 대표적인 것이 대입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 시험이다. '과거를 망각하면서 현재를 이해할 수 있을까?', '철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사랑이 의무일 수 있는가?' 등 바칼로레아에 출제된 문제만 봐도 프랑스 사회가 추구하는 교육이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 출제된 문제는 프랑스 전 사회의 이슈가 돼 TV 토론회 등이 등장한다. 합격자는 수험생의 80% 이상, 20점 만점에 10점 미만자에게는 재시험의 기회를 줘 합격률을 높이려 한다. 못하는 학생을 가려내려는 것이 목적이 아닌, 더 많은 이에게 공부의 기회를 제공하려는 것이다.
또 프랑스인들은 책상 앞에서 책을 파는 것만 공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평소 가족이 모두 모여 식사 시간에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는 것이 보편적인 문화다. 프랑스에서 초등학교를 다닌 김정서씨는 "프랑스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과 다양한 주제로 활발하게 대화를 나누기 때문인지 사고방식이 일찍부터 성숙해지는 것 같다"라고 전한다. 실제로 학교 교육도 논리적 사고력과 표현력을 중요시한다. 정답을 찾는 것이 중요한 한국의 교육과 자신의 생각을 쓰는 것이 중요한 프랑스의 교육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프랑스에서 초등학교를 다녔으며 현재는 서울대학교 산림과학과에 재학 중이다. 프랑스와 한국의 교육을 모두 경험한 입장에서 프랑스에서는 공부 스트레스를 거의 느끼지 않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 수 있는 시간이 많았던 반면, 한국에서는 친구들이 모두 학원에 가느라 함께 놀 수 없었던 것이 가장 적응하기 힘들었다고 꼽는다.
독일
초등학교 4학년 때 진로 결정
독일의 초등학교는 4학년까지다. 중·고등학교는 학교에 따라 8~9학년으로 이뤄져 있다. 원래 9학년까지였는데 8학년으로 변경됐다가 학생들이 극심한 스트레스에 노출된다는 반발이 거세지면서 다시 학교에 따라 8~9학년으로 변경됐다. 독일 교육제도의 특이한 점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아이들의 진학 계획이 결정된다는 점이다. 4학년 중간 성적표가 나오면 학업 능력과 적성을 바탕으로 어느 학교에 진학할 것인지를 정하는데, 고등학교에 진학할 학생과 실업학교 등에 진학할 학생으로 나뉜다. 너무 일찍 아이의 진로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지만, 자신의 길을 빨리 정하는 독일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 교육 정책이다.
초등학교의 성적은 필기시험 점수가 50%, 수업 중 발표하기 등 수업 태도가 50%를 차지한다.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성적표에 점수가 기재되지 않고 문장으로 된 성적표가 나온다. 2학년부터는 점수가 있는 성적표가 나오며 과목 점수 외에 공부하는 태도, 사회적인 태도에 관한 점수가 표시된다. 그만큼 아이들의 공부 자세와 평소 학교생활 태도를 중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아무리 과목 성적이 좋다고 해도 이 점수가 나쁜 학생은 초등학교 졸업 뒤 진학할 수 있는 학교를 찾기가 힘들어진다.
한국 같은 과외 열풍은 없다
독일에도 사교육이 있긴 하다. 최근 들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그렇다 해도 전문 선생님을 고용해 고액 과외를 시키는 한국의 사교육과는 차이가 큰,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독일의 학교는 낙제 제도가 있는데, 학생이 낙제할 가능성이 크다 싶을 때 중·고등학교부터 개인과외를 하는 편으로 조금 위 학년의 학생들에게 과외를 받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렇게 과외를 받는 게 일반적인 것은 아니며 대부분은 학교의 지원 수업을 통해 각자 부족한 부분을 채워간다. 독일의 초등학교에서는 수업을 잘 따라오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집중 교육을 실시한다. 학교에서 무료로 해주는 과외 수업인 셈이다. 독일어, 책 읽기 등 공부 과목뿐 아니라 운동까지 지원 수업을 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변화 추세, 그래도 한국보다는 덜 경쟁적
최근 독일의 교육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는 추세다. 출산율이 줄면서 1~2명의 자녀만 키우는 가정이 늘어났는데, 그러다 보니 '하나밖에 없는' 자녀에게 많은 지원을 하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는 것. 그래서 요즘에는 자녀를 직업학교가 아닌 고등학교(김나지움), 대학교에 보내고 싶어 하는 부모가 많아졌다고 한다. 점점 고학력을 추구하는 분위기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등학교가 9학년제에서 8학년제로 바뀐 것도 사회적인 이슈로 떠올랐는데, 8학년으로 과정이 줄면서 아이들의 공부 스트레스가 과도해졌다는 뉴스가 매스컴을 장식하기도 했다. 현재는 아직 8학년을 고수하는 학교가 더 많지만 거센 비난 여론에 다시 9학년으로 바꾼 학교들도 있다.
이런 일련의 사회적 변화 때문에 요즘 독일 아이들의 스트레스가 예전에 비하면 조금 늘었다는 의견이 많지만 독일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 엄마들은 "그래도 한국과 비교하면 훨씬 스트레스가 적다"라고 입을 모은다. 더구나 이런 스트레스도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만 느끼는 것이지, 실업학교 등 다른 진로를 택한 학생들은 과도한 공부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모든 학생들의 스트레스가 늘어난 것은 아니다. 또 독일 부모들은 최근 들어 고학력을 추구하고 있긴 하지만 자녀가 잘 적응하지 못한다는 판단이 들면 억지로 공부하도록 하기보다는 빨리 욕심을 버리고 적성에 맞는 진로를 모색하는 분위기라고.
Profile 도움말을 준 김영희씨는…
독일에서 초등학교 2, 3학년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주부. 독일에서 사회학을 전공했으며 오래전부터 유럽의 교육제도에 대해 관심이 많다. 독일의 소식을 전해준다는 의미의 '독일벨이'란 닉네임으로 자신의 두 번째 고향인 독일의 교육, 생활, 사회 이슈 등을 전달하는 블로그(blog.naver.com/germanlife14)를 운영하고 있다.
<■기획 / 장회정 기자 ■글 / 정성민(프리랜서) ■사진 / 송미성(프리랜서), 경향신문 포토뱅크 ■사진 제공 / 김정서, 정현숙 ■도움말 / 김영희, 김정서, 에듀프랑스유학, 정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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