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개봉한 영화 ‘죽어도 좋아’의 한 장면. 일흔을 넘긴 남녀가 우연히 만나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그린 영화로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노인의 성(性) 문제가 공론화 되는 계기가 됐고, 더 이상 부끄러워 감출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중앙포토]
50대 남성의 고민이 아니다. 경기도 수원에 사는 76세 A씨가 최근 지역 노인복지관 성상담 직원에게 전한 고민이다.
65세 이상 66% “성생활 한다”
노인들의 성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부부간 성문제, 이성과의 문제를 털어놓는 노인이 많아졌다. 체면 때문에, 아니면 부끄러워서 더 이상 감출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된 데 따른 것이다. 12일 경기도에 따르면 도내 노인복지관에 설치된 성상담 창구 29곳에는 하루 평균 60여 명이 찾고 있다. 성상담 창구는 지난 9월부터 본격 가동됐다. 이전까지 노인복지관에서 성생활 고민을 얘기하는 노인은 거의 없었다. 박노숙(50) 경기도노인복지관협회장은 “노인들이 갈수록 건강해져 성생활을 누리는 비율이 높아진 데다, 황혼 재혼도 늘어나면서 성적인 문제를 드러내고 상담해 고치려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노인들 상당수가 성생활을 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2011년 서울·경기도 지역 65세 이상 노인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66.2%가 ‘성생활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들은 발기부전 치료제를 이용(50.8%), 성인용품(19.6%)이나 성기능 보조의료기기(13.6%) 등을 구입한 경험도 있다고 했다.
노인 성범죄 5년 전보다 55% 늘어
일각에서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음성적인 성매매도 이뤄진다. 성적인 욕구는 남아 있는데 부부간 성생활이 원만치 않거나 홀로 된 노인들과 성매매를 하는 것이다. 대구의 한 공원이 대표적인 장소다. 이곳엔 늘 립스틱을 바른 여성 노인 10여 명이 맥주·박카스나 다른 음료수가 든 봉지를 들고 서 있다. 음료수를 주며 접근한 뒤 성매매를 하기 위해서다. 이곳에서 만난 60대 성매매 여성은 “불법인 줄 알지만 우리가 없으면 노인들의 성적 욕구를 누가 해결해 주느냐”며 “젊은 사람들은 노인들의 마음을 모른다”고 말했다.
한편에서 노인 성범죄가 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61세 이상 노인의 성범죄 건수는 2008년 710건에서 지난해 1104건으로 55% 증가했다. 노인 성범죄와 음성적인 성매매는 아직 한국 사회에서 노인의 성문제가 본격적으로 공론화되지 않은 상태임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건전한 성인식 변화 이슈화 나서
이런 가운데 경기도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노인 성문화 축제’를 준비했다. 노인 성문제를 한층 공론화하고 해법을 모색해 보자는 취지다. 행사는 17일 오후 1시30분부터 4시30분까지 의정부에 있는 경기도 북부청사에서 열린다. 행사에서는 비뇨기과 진료 상담을 받고 화장법 등을 배울 수 있다. 또 가부장적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방적인 성관계가 아닌, 애정이 담긴 성관계를 하자는 내용 등을 담은 ‘노인 성문화 선언문’도 채택한다.
경기도 박정란 복지여성실장은 “그간 청소년들을 위한 성교육이나 성문화사업 등은 많았으나 어르신들을 위한 것은 없었다”며 “노인의 건전한 성 인식 변화와 건강한 가족관계 개선을 위해 노인 성문화 축제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임명수·김혜미 기자, 대구=김윤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