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포럼2013-브룬틀란 "한국이 노르웨이처럼 되려면…"
입력시간 | 2013.11.18 07:31 | 김재은 기자 aladin@
남녀 경제·학력·사회활동 격차지수 노르웨이 3위 한국 111위
"한국 직장 내 여성 비율 늘리고 남녀 소득 격차 줄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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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재은 기자] 한국인들의 인식 속에 잘 사는 북유럽 복지국가인 노르웨이. 실제
지난해 노르웨이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0만달러에 육박하며 전세계 3위에 올랐다. 한국(2만3000달러)보다 4배이상 높은 수준이다. 소득만큼이나
높은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와 잘 갖춰진 복지 시스템이 뒷받침되고 있지만, 노르웨이도 원래부터 그런 나라는
아니었다.
지금의 노르웨이가 있기까지는 30여년 전 노르웨이의 최연소이자 최초의 여성총리인 그로 할렘
브룬틀란의 역할이 컸다. 그녀는 총리만 3차례 지내면서 18명의 내각 구성원중 8명을 여성으로 채워 당시 노르웨이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큰 반향을 불러왔다. 사실 민주주의가 뿌리 깊은 프랑스도 지난해에서야 남성장관 19명, 여성장관 18명의
동수 내각을 구성한 점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파격적인 조치로 평가된다.
브룬틀란 전 총리는 이데일리와의 서면인터뷰에서 “나는 여성의 권리와 기회 확대, 가족문제
개선을 위한 정책에 집중했다. 여성비율이 높아진 것이 단점으로 작용한 적은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녀는 두 번째 총리 시절인 1983년 기업들의 이사회에서 여성이사
비율을 최소 40%로 정한 여성임원할당제를 의무화했다. 처음에는
반발이 거셌지만, 여성임원이 늘어나자 기업 성과가 좋아졌다는 평가가 잇따랐고,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여성임원할당제를 벤치마킹하기에 이른다. 지금
노르웨이에서는 기업뿐 아니라 모든 선출조직내 여성비율이 최소 40%로 규정돼 있다.
◇ 한국, 여성·가족 친화적 정책 확대 필요
“새로운 정책은 항상 일정집단의 반대에 부딪치게 마련이지만, 자신의 핵심 포인트를 명확히
제시하는 게 중요하다. 물론 변화를 위해 필요한 다수의 지지자 확보도 필수적이다.”
북유럽 복지국가 노르웨이의 어머니. 그로 할렘 브룬틀란이
28일 이데일리가 개최하는 세계여성경제포럼(WWEF)2013에서 ‘사회와 경제번영을 위한
여성의 핵심적 역할’에 대해 기조연설을 하기 위해 한국을 찾는다. 2011년 지미 카터 등과 함께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지역의 평화적 관계 개선을 위해 방한한 이후 2년만이다.
이번 포럼에서 자신의 ‘전공분야’를 이야기하게 될 브룬틀란 전 총리는 우선 한국 사회의 분발을 촉구했다. “한국은 가족과 여성 친화적 사회정책을 더 많이 도입해야 한다. 이를
통해 직장내 여성비율을 대폭 늘리도록 자극하고, 남성과 여성간에 존재하는 큰 소득 격차를 줄일 필요가
있다.”
노르웨이에서 최초의 여성 총리가 나온 지 30여년 뒤 첫 여성대통령이 나온 한국. 그녀는 여성 대통령의 선출이 한국 여성의 기본권을 좀 더 명확히 인식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최근 브라질, 독일 등에서도 여성 정치 지도자가 늘어나는데
대해 큰 진보로 평가했다. 브룬틀란 전 총리는 “세계가 계속 진보하고 있다는 점이 기쁘다. 이제 세계는 여성이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것을 이상하게 보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며 “더 나은 사회와
세계를 만들기 위해선 여성과 남성, 사람들 모두가 가진 능력을 자극하고 활용해 사회적 기여 활동으로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남녀차 확대해석, 여성활동 발목”
그녀는 ‘남성과 똑같이’되기를 원하는 여성을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여성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지 않고, 남성과 동일한 수준의 존경과 기회를 얻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것이 차이와 차별에 관한 모든 논의의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사실 브룬틀란 전 총리 역시 젊은 정치인으로, 여성으로서 분명 소수집단에 속해 있었다. 그녀는 이런 사실이 옳지 않다고 느꼈고,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성의 권리와 기회문제, 가족문제 개선을 위한 개혁에 집중했다. 그 결과 여성비율 40% 할당제,
남녀 동수내각 구성 등 상당히 큰 성과를 이끌어냈다.
그녀는 지금껏 수백년간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를 너무 확대 해석한 것이 여성의 사회활동을 억눌러왔다고 지적한다. 남자와 여자가 다른 것은 맞지만, 남녀의 차이라기 보다는 모든 인간은
독특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접근이다. “우리는 우리의 성별이 아닌 개인의 특성, 능력, 기능을 바탕으로 스스로의 힘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
◇ 법적 평등권 재조명해야
최근 세계경제포럼(WEF)이 밝힌 성(性)격차지수
순위에서 한국은 130여개국 가운데 111위로 꼴찌수준이었다. 반면 노르웨이는 3위로 남녀의 격차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1980년대부터 여성배려 정책이 시행된 복지국가 노르웨이와
한국의 현실을 단순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다. 성 격차지수 항목은 경제활동 참여율, 유사노동 임금성비, 소득, 관리직, 전문직, 문해율, 초등학교
취학률, 대학취학률, 출생성비, 건강 기대수명, 국회의원 수, 장관
수, 여성총리와 대통령 재임기간 등 총 14개 항목이다.
한국은 ‘경제 참여 및 기회’에서 관리직의 경우 0.11점에 그쳤다. 관리직에 진출한 10명가운데 9명이
남성이고, 여성은 단 1명에 그친다는 의미다. 국회의원수 0.19점, 장관수 0.14점 등도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
이에 대해 브룬틀란 전 총리는 ‘법에 보장된 평등권’을 재조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국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이 크게 늘었지만, 적재적소에 활용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그녀는 “노르웨이에서는
법에 보장된 평등권에 대한 법리 검토를 거친 후 해당 업무에 지원한 이들중 적합한 사람을 뽑기 위한 채용규정에 ‘평등권’을 포함시키고 있다”고
조언했다.
◇ 월급받는 육아휴직 보장 필요
무엇보다 일하는 여성이 갖는 육아와 출산에 대한 부담을 덜기 위해선 가족뿐 아니라 직장에서의 규범과 권리의 틀을 모조리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컨대 출산시 여성은 급여 전액을 받으면서 육아휴가를 보장받는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육아가 단지 어머니 몫이 아니라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이 확산되면서 남성의 육아휴가 권리를 보장하는 추세로 바뀌고 있다. 고용주 역시 남성도 육아 문제로 몇 달씩 자리를 비울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하면서 점차 남성을 선호하는 성향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육아 부담은 여성에게 더 많이 지워져 있는 만큼 한 살배기부터 시작해 아동 대부분 혹은 모두를 위한 보육시설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녀는 “출산과 육아에 대한 부담은 어느 사회나 존재하는 기본적인 문제로 변화가 필요하다”며 “일하는 여성의 완전한 사회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가족생활 뿐 아니라 직장에서의 규범과 권리의 틀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르웨이에서는
아이가 아플 경우 부모가 아이의 병간호를 위해 1년에 총 20일간의
휴가를 낼 수 있다.
물론 전통적 사고방식과 사회 문화 속에서 이같은 변화를 이끌기는 쉽지 않다. 그녀는 “사회적
논의와 변화를 통해 전통적인 사고방식도 서서히 바뀌고 있고, 이런 변화가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우리 사회 전체에 어떤 혜택을 가져올 것인가에 대한 논의와 여론 형성 과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30여년전 최연소이자 최초 여성 총리였던 그녀가 추진한 정책들은 가족문제와 직장내 평등을 위해 시작됐다. 초기엔 반대가 거세기도 했지만, 점차 변화를 확대할 만한 다수의
지지를 받았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특히 브룬틀란 전 총리는 “최초의 여성대통령이 선출된 한국에서
‘롤모델’로서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녀는 여성비율을 높인 것이 단점으로
작용한 적은 없었다고 단언한다. 지금이 30년전 노르웨이처럼
한국에서 변화를 이끌어 낼 바로 그 시점이다. X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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