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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학 교육의 현실: 교수 말 토씨까지 받아적어야 A+ 받는 서울대(오상훈 목사의 뷰)

맘사라 2014. 10. 24. 22:40

교수 말 토씨까지 받아적어야 A+ 받는 서울대

등록 : 2014.10.23 20:26수정 : 2014.10.24 08:42


한국 최우등생들이 간다는 서울대는 과연 최우등 대학일까? 교육공학자 이혜정 ‘교육과 혁신 연구소’ 소장은 세계 기준으로 볼 때 전혀 그렇지 못하다고 얘기한다. 그가 현장조사를 통해 서울대 교육의 허실을 파헤친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

이혜정 지음/다산에듀·1만6000원

답안에 창의적 생각 적었다가
참혹한 성적 받은 ‘경빈이’
‘비판’ 포기하자 다시 최우등생으로
‘집어넣는 교육’에서 ‘꺼내는 교육’으로
바뀌지 않으면 우리 미래는 없다

서울대에서는 누가 A+(에이플러스)를 받는가?

예컨대 이런 학생이다. “교수님께서 얘기하시는 걸 말의 형태로 그대로 적어요. 요약하는 게 아니라 교수님 말씀을 완성된 문장 그대로 똑같이 적는 거예요. 단어도 그대로 똑같이. 그림은 교수님이 칠판에 그리는 것만 적어요. 교수님 ‘말’이 제일 중요해요.”

이혜정 ‘교육과 혁신 연구소’(www.eduinno.org) 소장이 쓴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에 인용된 서울대 사범대 ‘예은이’라는 학생 인터뷰 내용이다. 최우등생인 예은이는 “수업시간만 되면 사라진다.”는 놀림을 받는다. 그 시간 내내 책상 위에 엎드린 자세로 납작 붙어 필기에 몰두하느라 잘 보이지 않아서다. 자연과학대 ‘현선이’는 필기만으론 안심이 안 돼 녹음까지 한다.

서울대 교육학과에서 학위를 받고 이 학교 사범대와 교수학습개발센터에서 오랫 동안 가르치고 교수들의 강의를 분석하고 컨설팅한 교육공학자 이 소장이 4.3점 만점에 평균 4.0 이상의 학점을 받은 서울대 2, 3학년 최우등생들을 조사했다. 전체학생의 2.5%인 150명의 이들 최우등생 중에서 46명이 자발적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몇 시간 또는 며칠 이들을 개별 인터뷰하는 한편 비교를 위해 전체학생들에 대한 설문조사도 병행해 1213으로부터 응답을 얻어냈다.

처음에 의도한 것은 최우등생들은 어떤 식으로 공부하길래 그렇게 뛰어난 성적을 받는지 알아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비결을 알아내면 다른 보통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이 소장은 생각했다. 그런데 서울대 교수학습개발센터 프로젝트의 하나로 시작한 그 조사를 진행하면서 그는 점점 당혹러워졌다. “과연 이런 식으로 공부해도 되나?” “우리나라 최고 대학이라는 서울대가 이렇게 가르쳐도 되나?”

결국 프로젝트는 교육의 목적과 내용, 방법 모두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서울대 교육의 난감한 실태를 확인하고 극복방안을 찾아보는 쪽으로 방향을 수정했다. 이 박사는 2년간 미국 미시간 주립대에 머물면서 서울대 학생들을 상대로 한 것과 동일한 프로젝트를 그곳 학생들 상대로도 실시했는데, 결과는 상당히 대조적이었다.

그 동안 서울대를 비롯한 한국 대학교육 문제에 대한 비판과 제안은 적지 않았으나, 이처럼 집단적 조사와 분석을 통해 공통점과 일정한 패턴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외국 특정 대학의 경우와 비교분석한 경우는 달리 찾아보기 어렵다.

조사 결과, 예은이나 현선이처럼 교수의 말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받아적는다는 비율이 인터뷰에 응한 최우등생 46명의 87%나 됐다. 인문대 ‘경빈이’는 대학에서는 고교 때와는 뭔가 달라야 한다는 생각에 수업시간에 교수의 말을 받아적기보다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려 했다가 1학년 때 형편없는 학점을 받았다. “창의력이야 만점이었겠죠. 근데 실제 학점은 완전히 참혹했어요.”

이 소장은 여러 사고 유형 중에 ‘수용적 사고력’과 ‘비판적 창의적 사고력’을 대조항으로 설정했는데, 예은이나 현선이와 같은 경우는 전자, 1학년 때의 경빈이는 후자 쪽이 강한 경우다. 이 소장은 지금 대학을 비롯한 세계 교육의 압도적 추세가 비판적 창의적 사고력을 강조하며 그것을 함양하는 쪽에 국가적 에너지를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대학 초년생 시절 경빈이와 같은 체험을 한 서울대 학생들이 어떻게 학점전략을 수정할지는 물어보나 마나다. 실제로 경빈이는 그 뒤 비판적 창의적 사고를 포기했고 다시 최우등생이 됐다. 그리하여 그의 수업중 노트 필기는 핵심어 중심의 메모나 요약이 아니라 말 그대로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다 받아적는 쪽으로 투항했다. 서울대 최우등생들 노트 필기는 그걸로 끝나지 않는다. 그게 1차 필기고, 수업 뒤에 그것을 구조화·도식화하고 요약하면서 재정리하는 2차 필기를 하고 때론 보충자료까지 보탠다. 시험 때는 이 재정리된 내용을 암기해서 가능한 한 교수가 한 말에 가깝게 써 내는 것이다. “창의력이란 게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뭔가를 창조하는 거잖아요. 그게 저한테는 너무 어렵더라고요.…창의력이 뛰어난 애들은 수용하는 게 좀 약해요. 그래서 학점이 안 좋아요.”(미술대 정유민)

서울대 최우등생들은 또 공부시간의 대부분을 수업 준비작업인 예습으로 보내는 미국 드라마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의 주인공들과는 달리 거의 예습을 하지 않는다. 46명의 최우등생 중 80%인 37명이 전혀 예습을 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내용을 잘 몰라 어렵기도 하지만, 할 필요성을 못느끼기 때문이다. 교수 말을 그대로 받아적어 잘 정리하고 암기하면 최고점수가 나오니까.

이 소장이 ‘퍼블릭 아이비리그’의 하나로 최상위권 학생들이 진학하는 중부 미시간 주립대의 학제간 연구공동체 ‘유에스이연구소(USE랩)’의 협력을 얻어 그 대학 학생 1000명 정도의 학점과 그들에 대한 설문조사 데이터 등을 토대로 분석한 결과는 서울대와 대조적이다. 미시간대 학생들도 자신의 비판적 창의적 사고력이 수용적 사고력보다 못하다고 응답한 비율이 높았지만 그 차이는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미미했다. 서울대생은 폭이 컸고 고학점자일수록 수용적 사고 비중이 더 높았다. 서울대생은 4년 내내 그 비율이 크게 바뀌지 않았으나 미시간대생들은 저학년 때 비판적 창의적 사고력 쪽이 낮았다가 고학년으로 갈수록 높아져 4학년 때는 수용적 사고 쪽을 능가하는 역전현상을 보였다.

동기조절, 과제관리, 시간관리, 수업전략 등으로 나눠 살핀 학생들의 학습전략에서 서울대생은 고학점자일수록 전략에 더 신경을 쓰는 비율이 확연히 높았으나 미시간대생은 학점구간별 변화가 거의 없었다. 두 대학 할생들간에 가장 큰 차이가 난 것은 수업전략이었다. 서울대생들은 수업전략 중 ‘수업시간에 교수의 강의 내용 모두를 필기한다’는 문항에 다수가 그렇다고 답했으며 고득점자일수록 비율은 더 높았다. 그러나 미시간대생들은 그렇다고 비율이 훨씬 낮았으며 학점구간별 변동도 변동도 거의 없었다. 그리고 ‘시험지에 자신의 의견을 쓰면 A+를 받을지 확신할 수 없는 경우 그 의견을 포기한다’는 설문에 서울대생 고득점자 대다수가 그렇다고 응답했으나 미시간대생은 단 한 명도 그렇게 답하지 않았다.

미시간대 교수는 말했다. “아시아 유학생들을 보면 다들 너무나 똑똑하고 열심히 공부하는데, 문제는 수업시간에 너무나 자기의견이 없고 결정적으로 논문(또는 에세이)을 제대로 쓰지 못해요.”

서울대 수업이 교수 말을 그대로 받아적고 이의 제기나 질문을 하지 않는 교수 중심이라면, 미시간대 수업은 드라마 <닥터 하우스>처럼 학생들이 오히려 더 많이 얘기하고 거리낌 없이 의견을 발표하는 학생 중심이다. 미시간대의 아시아계 학생들의 수업전략은 서울대생의 그것과 비슷했다고 이 소장은 썼다.

고교 때의 놀라운 성적을 들고 높은 기대 속에 미국대학에 유학간 아시아 학생들 다수가 졸업 때 평범한 학생으로 변해 가는 것은 유교적 질서로 대표되는 아시아쪽의 문화적 풍토와 상관관계가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창의력과 통찰력을 적극적으로 발휘했던 조선시대의 과거시험이나 성균관 수업, 왕의 경연, 질의 응답식 학습이 주류였던 공자 시대의 중국을 보더라도 아시아 학생들의 수용적 사고는 전통문화가 조건지운 불변적 요소 탓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게 이 소장 생각이다. 서구든 아시아든 시대상황에 따라 풍토와 조건은 변하는 것이다.

학생을 수동적 존재로 ‘내버려두는’ 교수 중심의 서울대 교육은 이 소장이 직접 현장에 가서 확인한 홍콩중문대, 영국 맨체스터대, 싱가포르 국립대, 캐나다 브리티시콜럼비아대, 하와이대 동서문화센터 등의 사례에 비춰봐도 예외적일 정도로 특이하다. 이들 대학은 미시간대보다 더 빠르게 변하고 있다. 최근 변화속도가 빨라진 베이징·칭화대 등 중국 본토 대학들에 비해서도 서울대의 교육은 시대변화에 매우 둔감한, 낙후된 것이라고 이 소장은 지적한다.

교수가 가르치는 방식을 답습하면서 교수를 닮는 걸 최고목표로 삼는 서울대 교육방식으로는 스승보다 뛰어난 제자를 길러내는 청출어람이 불가능하다. 이것은 분명 질문을 귀찮아하고, 진도를 강조하며, 수용적 사고를 통해 지식기초를 다진 뒤에야 비판적 창의적 사고를 발휘할 수 있다고 믿는 시대착오적 사고에 젖어 있는 교수 탓이다. 창의적 학습과 수용적 학습엔 선후가 있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이 소장이 인용한, 몰입 이론으로 유명한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창의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 노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임을 증언한다. 수용 일방적 학습은 창의력의 싹을 자르는 셈이다.

하지만 이 소장이 보기에 교수들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사정도 있다. 강의보다는 연구실적 쌓는 쪽에 더 많은 평점과 보상을 주는 교수평가 방식 등을 고집하는 대학 당국이 더 큰 책임을 져야 할지 모른다. 외국의 우수 대학들은 강의교수와 연구교수를 동등하게 대우하거나 강의 전문교수를 오히려 더 우대하는 쪽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리고 서울대의 문제들은 수많은 규제로 교사나 교수들의 수업 자율권을 빼앗고, 혁신적 인재보다는 말 잘듣는 기능인을 선호하고 우대하는 국가 정책, 사회의 가치관이나 풍토와도 밀접하게 얽혀 있다. 다수 서울대생들의 관심은 세상이나 사회적 정의보다는 주로 고시냐 교수냐 대기업 취업이냐의 개인과 가족 중심적 고민과 선택 문제에 고착돼 있다고 이 소장은 썼다.

질문이 없는 교육에서 ‘질문을 발굴하는 교육’으로, 결과를 가르치는 ‘집어넣는 교육’에서 과정을 중시하는 ‘꺼내는 교육’으로. 이는 세계적 추세이며, 이를 외면하면 뒤쳐질 수밖에 없다. 이것이 지구적 시야와 현장체험을 다진 이 소장이 내린 결론이다.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는 서울대가 그것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