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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안의 이단 세력: 신천지의 성구풀이에 대한 개혁신학적 비판

맘사라 2014. 6. 15. 23:51

신천지의 성구풀이에 대한 개혁신학적 비판

 

한국교회 이단사이비운동 비평심포지엄2
2013년 04월 24일 (수)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김성봉 교수 / 대신총회신학교 조직신학, 신반포중앙교회 담임


본 글은 한국기독교사연구소(소장 박용규 교수)와 미래목회포럼(대표 오정호 목사)이 2013년 4월 22일 서울 잠원동 신반포중앙교회에서 공동개최한 ‘한국교회 이단사이비운동 비평심포지엄2’에서 발표된 논문입니다. <편집자주>

<목차>
1. 신천지의 문제점과 비판
1) 이만희 교주에 대하여 노골적으로 주장하는 내용과 그에 대한 비판
① 사 1:1~2:4 / 이사야서 전장의 요약
② 사 53:10
③ 사 61:1
④ 사 62:1~5
⑤ 겔 3:1~5
⑥ 학 2:23
⑦ 말 3:1
⑧ 말 4:5
⑨ 요 14:16~26
⑩ 고전 13:8~12

2) 신천지 신도에 대하여 은연중에 주장하는 내용과 그에 대한 비판
① 렘 3:14, 15
② 렘 51:25
③ 겔 31장
④ 겔 47:1~12
⑤ 다니엘서
⑥ 호 2:16~19
⑦ 히 11:39~40

3) 부차적인 내용과 그에 대한 비판
① 사 34:16 "짝"
② 사 46:10 "모략"

2. 저들의 주장의 요점
1) 기성교회에 대한 적대감
2) 비유풀이식 해석
3) 교주 이만희에게로 귀결
4) 선민의식

맺음 말


1. 신천지의 문제점과 비판

1) 이만희 교주에 대하여 노골적으로 주장하는 내용과 그에 대한 비판

 

① 사 1:1~2:4 / 이사야서 전장의 요약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 신천지의 주장 : 이사야서는 하나님께서 택하고 언약(창조)한 선민 유다와 예루살렘이 배도함으로 이방에게 멸망당하여 심판 받아 없어짐으로 한 세상이 가고(1장), 그 후에 유다와 예루살렘을 다시 택하여(재창조) 하나님의 나라와 백성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세상에 충만할 것(2:1~4)을 예언한 구약의 대표적인 예언서로서, 전장 66장을 요약해 놓은 것이 사 1:1~2:4까지의 말씀이다. 구약에 예언된 하나님 나라와 선민 창조의 노정을 요약하면, 목자(유다) 택함―장막(예루살렘) 창조―언약―배도―멸망―새 목자 택함―새 장막(새 예루살렘) 창조―대적심판과 구원―새 언약―생육·번성·충만·정복·다스림의 순리이다.

 

배도와 멸망의 사건 후에 재창조된 새 예루살렘을 시온산(사 2:3; 16:1; 28:16; 33:20; 65:25)과 새 하늘 새 땅(사 65:17~19; 66:1, 22)이라고 비유하기도 한다. 이것이 요한계시록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으니, 7별 7금 촛대가 있는 유재열의 첫 장막(=처음 하늘/계 13:6)이 배도함으로 7머리 10뿔 짐승인 오평호 목사의 청지기교육원에 사로잡혀 멸망당한 후 짐승과 싸워 이긴 한 목자(이만희)를 택하시고 새 장막을 창조하셨으니 바로 새 하늘 새 땅(新天地) ‘증거장막성전’(계 15:5; 21:1)인 것이다. 이러한 천국 창조의 원리를 요약한 것이 말세 주 재림의 노정인 배도-멸망-구원의 순리(살후 2:3)이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알아야 할 세 가지 비밀은 배도의 사건과 멸망의 사건과 구원의 사건이다.

 

△ 비판 : 여기에 유재열, 오평호, 이만희를 직접 거명하면서 성경을 풀이하고 있다. 너무나 자기중심적이요, 아전인수 격인 해석과 적용이다. 마치 전 세계의 역사가 경기도 과천의 장막성전을 중심으로 돌아가듯이 말한다. 과연 그런가?

 

② 사 53:10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 신천지의 주장 : 상함을 받으시는 그는 초림으로 오셔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며,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주님이 보게 된다는 ‘씨’는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진리의 성령 다른 보혜사에 대한 약속으로, 재림 때 말일에 나타날 약속한 목자는 다시 떠나가지 않고 영원히 살면서 성경의 모든 예언을 다 이루실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이다.

 

△ 비판 : 본문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으로 본 것은 잘한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씨’는 보혜사 성령을 가리키기보다 그리스도께서 대속의 제물로 죽으신 결과 생겨 날 ‘그를 믿는 자들’로 보아야 할 것이다(박윤선). 저들이 여기서 굳이 ‘진리의 성령 다른 보혜사’와 ‘약속한 목자’를 언급하는 것은 교주 이만희에게로 귀결시키려는 의도에서이다. 메시야에 대한 구약 예언과 연관하여 그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는 것에 대하여는 비교적 건전하다. 하지만 재림 때 혹은 말일과 연관하여서는 예수는 간 곳 없고 ‘다른 보혜사,’ ‘약속한 목자’ 등의 이름으로 교주 이만희가 언급된다.

 

③ 사 61: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 신천지의 주장 : 이 말씀은 예언이며 성취된 짝의 말씀은 눅 4:17절 이하의 말씀이다. 본문은 주의 영이 당시 이사야 선지자에게 임하여 기름을 부은 것 같이 기록되었지만, 사실 이 말씀은 약 700년 후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었고, 예수님은 오셔서 이 예언의 말씀이 오늘날(예수님 당시) 너희 귀에 응하였다고 하심으로 사실상 이사야 61장의 말씀이 이사야 선지자를 빙자하여 예수님을 증거 한 인명을 빙자한 비유의 예언이었음을 밝히 드러내신 것이다.

 

이와 같이 구약의 선지자를 빙자하여 비유를 베풀어 초림 예수님을 증거 하였듯이, 재림을 약속한 요한계시록도 말일에 나타날 약속의 목자를 그 당시 사도요한을 빙자하여 비유를 베풀어 기록한 것임을 깨닫고, 이와 같이 나타날 오늘날의 사도요한 격인 사명자, 한마디로 새 요한을 만나야 비로소 요한계시록의 비밀을 밝히 깨닫고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이다.

 

△ 비판 : 여기서도 소위 비유풀이의 방식으로 계시록을 언급하며 결국에는 ‘새 요한’이라 불리는 교주 이만희에게로 귀결되도록 말하고 있다. 본문의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었다 해서 같은 방식으로 계시록을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하여서도 일단 전후를 살펴서 가부를 확인해야 하겠고,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그 적용이 이만희라고 말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④ 사 62:1~5


“나는 시온의 의가 빛 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 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 이방 나라들이 네 공의를, 뭇 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 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관,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 다시는 너를 버림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 신천지의 주장 : 본문의 시온과 예루살렘은 장차 오실 메시야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으로서, 2천 년 전 예수님으로 성취되었음을 안다. 이는 지명을 빙자하여 비유를 베푼 것이며, 나아가 시온과 예루살렘을 여호와의 새 이름으로 일컬을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인데(출 3:15) 여호와의 새 이름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이사야 선지자는 처녀에게서 한 아들이 태어나는데(사 7:14) 그 아이가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증거 했다(사 9:6). 이 예언이 이루어졌으니 그 아이가 바로 처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예수님이었다. 이 아기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었고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나님이 작명해 주셨으니, 이 ‘예수’라는 이름이 바로 하나님의 이름인 것이다. 구약에서 원래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였으나 예수라고 일컫게 됨으로 이 ‘예수’라는 이름이 여화와 하나님의 ‘새 이름’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사야 62장의 예언이 예수님을 통해 성취된 것이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예수님의 새 이름은 무엇인가? 예수님의 새 이름을 이기는 자에게 기록한다고 하셨으니(계 3:12) 이기는 자의 이름이 예수님의 새 이름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또한 신랑으로 비유된 하나님의 성령이 신부로 비유된 예수님의 육체에 임하셔서 하나 됨으로(혼인) 임마누엘이 되신 것 같이, 재림 때는 영으로 다시 오시는 예수님께서 예수님께서 보내시는 사자(계 22:16)에게 오셔서 하나 됨으로 예수님의 성령은 신랑이 되고 예수님의 사자는 신부가 되어 하나 됨(혼인)으로 성령과 신부가 오라고 하시는 것이다(계 22:17).

 

△ 비판 : 시온과 예루살렘이 장차 오실 메시야가 아니라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서 그 때의 유대 민족을 표상하지만, 장차 올 신약 시대의 하나님 백성도 가리킨다(박윤선). 이 예언이 예수님에게서 성취되었으므로 여호와의 새 이름이 예수라고 하는데, 이 단락에서는 장차 올 신약 시대의 교회가 얼마나 눈부시게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일에 대하여 보여주고 있으며, 여기서 말하는 새 이름이란 신약시대의 신자들이 장차 하나님에게서 받을 이름이다. 신자들은 양심적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한 옛사람이 아니고 새 사람인 만큼 하나님의 새로운 판정을 받게 된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부터 되는 일이겠지만 내세에 들어가서는 그 판정이 완결된다(박윤선).

 

이 단락에서 계 22:17을 희한하게 해석하고 적용하고 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여기서 성령은 성령이며 신부는 교회이다. 그럼 신랑은?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이시다. 그런데 저들은 말하기를 “영으로 다시 오시는 예수님께서 예수님께서 보내시는 사자(계 22;16)에게 오셔서 하나 됨으로 예수님의 성령은 신랑이 되고 예수님의 사자는 신부가 되어 하나 됨(혼인)으로 성령과 신부가 오라고 하시는 것”이라고 하면서 저들의 교주 이만희에게서 그 실현을 보는 듯이 은연중에 말하고 있다. 이 경우에도 저들의 독특한 비유풀이 방식을 적용하는데, 우리 주님의 성육신과 관련하여 “신랑으로 비유된 하나님의 성령이 신부로 비유된 예수님의 육체에 임하셔서 하나 됨으로(혼인) 임마누엘이 되신 것”으로 말한다. 이런 표현을 하는 저들에게는 전통적인 삼위일체 교리가 설 자리가 없다.

 

⑤ 겔 3:1~5


“또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발견한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하라 하시기로 내가 입을 벌리니 그가 그 두루마리를 내게 먹이시며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를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에게 가서 내 말로 그들에게 고하라 너를 언어가 다르거나 말이 어려운 백성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내는 것이라”

 

△ 신천지의 주장 : 에스겔을 인자라 하심은 예언이 성취될 때 실상의 주인공인 예수님을 염두에 둔 인명을 빙자한 비유적 표현이며, 약 오백년 후에 예수님이 오셔서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마 15:24)고 말씀하시고, 12제자들에게도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마 10:5~6)고 하심으로 성취된 것이다. 그러므로 두루마리를 받아먹고 패역한 이스라엘에게로 보냄 받은 에스겔은 장차 올 예수님에 대한 예언이었고, 예수님이 오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요 17:8)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심으로 에스겔의 예언이 비로소 성취되었던 것이다.

 

요한 계시록 10장에도 사도요한에게 펴 놓인 책을 주어 먹게 하고 나라와 백성과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라고 하심은 주 재림 때 나타날 한 목자를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성취될 때 사도요한의 입장에서 출현하는 한 목자가 펴 놓인 책인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받아먹고 다시 예언하게 되니, 이 목자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목자요(렘 3:14),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는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이며(마 24:45), 감추었던 만나를 받는 이긴 자요(계 2:17), 계시와 말씀을 받고 12지파 십사만 사천의 종들을 인치는(계 7:3; 1:1~3) 사도요한을 빙자하여 비유로 약속한 새 요한인 것이다.

 

△ 비판 : 역시 여기서도 비유풀이 방식으로 에스겔의 ‘인자’로부터 시작하여 계시록의 ‘요한’을 거쳐 저들의 교주 이만희에게로 귀결시키고 있다. 본문에서 선지자 에스겔을 지칭하여 말하는 ‘인자’(벤 아담)는 에스겔 자신을 “연약한 인간”이라고 하여 겸비하게 하려는 것이다(박윤선). 에스겔 선지자는 단순히 비유로서가 아니라 그 때 자신의 현실을 살았다. 그리고 에스겔의 경우를 두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된 예표라고 말하는 데는 전후 맥락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요한계시록 10장에서도 당사자는 사도 요한이며 그는 자신의 시대를 구체적인 현실로 살고 있었다. 표현은 에스겔에서 빌어 온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내용이 예표가 되고 그 실상이 오늘날의 새 요한인 이만희에게서 성취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아전인수격인 주장이다.

 

⑥ 학 2:23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세우고 너를 인장으로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

 

△ 신천지의 주장 : 제2성전 건축을 주도했던 역사적 인물인 총독 스룹바벨을 빙자하여 메시야에 대해 예언한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스룹바벨을 택하시고 그를 도장(印)으로 삼으셨다. 이름이 새겨진 도장은 말씀을 받은 목자를 비유한 것으로, 그 목자를 통해 말씀을 증거 하는 것을 인친다고 표현하며, 그 말씀을 받아 마음 판에 새기는 것(잠 3:3)을 인 맞았다고 비유한다. 스룹바벨을 빙자하여 비유한 하나님의 인은 하나님께서 택하시고(눅 9:35) 말씀을 주신(요 17:8) 예수님이었고(요 6:27), 예수님께서 보고들은 것을 증거 하실 때 그 증거를 받는 이들은 인 맞은 것이었다(요 3:33).

 

주 재림 때도 하나님께서 보낸 천사가 손에 인을 가지고 와서 12지파 144000을 인치는 일이 예언되어 있는데(계 7:1~4), 이는 영(靈)인 천사가 한 목자를 택하고 말씀을 주어 인(印)을 삼아서 그를 통해 대언하게 하므로, 12지파 144000을 모을 것을 예언한 것이다. 그러므로 천사의 손에 있는 도장은 천사로부터 펴 놓인 책을 받아먹고 나라(교회)와 백성(신도)과 방언(교리)과 임금(목자)에게 다시 예언하라(계 10:8~11)고 명을 받고 예언하는 오늘날의 새 요한이 되는 것이다.

 

△ 비판 : 여기서도 비유풀이 방식을 통하여 스룹바벨로부터 출발하여 예수님을 넘어 교주 이만희에게로 집중시킨다. 구약 예언으로부터 예수님에게까지는 건전한 가르침을 인용하면서 잘 하고 있으나, 재림 예수에게 돌려야 할 영광을 이만희에게로 돌리므로 그 영광을 가로채고 있다. 본문에서 “내가 너를 세우고 너를 인장으로 삼으리니”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스룹바벨로 대표된 하나님 백성을 영접하고 그들을 인장과 같이 귀하게 간수하고 영화롭게 하시리라는 의미이다(박윤선). 렘 22:24에는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과 관련하여 귀하게 여기지 않겠다는 의미의 대조적인 표현이 기록되어 있다.

 

 

⑦ 말 3: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 신천지의 주장 : 하나님께서는 장차 두 사자의 출현을 예언하고 있다. 먼저 보내는 사자는 하나님 앞에서 길을 예비하는 사자요, 다음은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다. 너희가 구하는 바 주 곧 너희가 사모하는바 언약의 사자는 먼저 보내는 길 예비 사자의 전(殿)에 홀연히 임하실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다.

 

이 예언은 약 400년이 지나서 성취되었으니 그 실상의 두 사자는 세례요한과 예수님이었다. 마태 3장에 기록된 대로 예수님의 등장 전에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 주의 길을 예비했던 세례 요한의 사역이 있고 나서,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다. 이것은 말라기 선지자의 예언 곧 언약의 사자는 홀연히 길 예비사자의 전(殿)에 임하신다는 예언을 이루시기 위한 의도된 일이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먼저 보낸 길 예비사자이며 예비 장막 성소 안에 있는(히 9:2) 등불 역할의(요 5:35) 요한에게서 세례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시는 예수님에게 성령으로 임하심으로 성경의 예언을 이루신 것이다.

 

요한계시록에도 두 사자가 나오는데, 먼저는 7금 촛대가 있는 예비 장막, 첫 장막(성소)의 길 예비사자 7별 7사자들이고(계 1:20), 다음에는 이 첫 장막성전에서 출현하는 사자가 있으니 예수님께서 교회들을 위하여 보내시는 바로 그 언약의 사자다(계 22:16). 이와 같이 주 곧 우리가 사모하는 언약의 사자는 그 전(前)에 반드시 길 예비 사자가 먼저 나타나야 하고, 그 후에 반드시 예비 사자의 전(殿)에 출현하게 되어 있으니, 말라기 3장 1절의 예언은 주 강림의 노정과 순리 그리고 출현 장소에 대해 구약성경에서 가장 구체적이고 가장 근일에 예언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고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한마디로 구약에서 약속된 언약의 사자는 예수님이었고, 신약에서 약속된 언약의 사자는 이긴 자 새 요한인 것이다.

 

△ 비판 : 요한계시록 22:16에서 언급된 “내 사자”가 “이긴 자,” “새 요한” 즉 교주 이만희라고 주장하는데, 여기서 말한 “내 사자”는 사도 요한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사도 요한을 넘어 이만희에게로 적용하기 위하여 본문을 비유로 적용하면서 굳이 “새 요한”이라고 하는 것이다.

 

⑧ 말 4:5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 신천지의 주장 :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은 주 곧 언약의 사자가 오는 날이요, 이 날이 이르기 전에 하나님께서 선지자 엘리야를 보내주시겠다는 예언이다. 말라기 3장 1절에서 주의 길을 예비할 사자를 먼저 보내겠다고 말씀하셨던 그 예비 사자가 바로 엘리야라고 구체적으로 적시하신 것이다. 이 예언이 성취됨으로 예수님께서는 오리라한 그 엘리야가 바로 세례 요한임을 밝히셨고(마 11:14), 세례 요한이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올 것을 천사가 미리 기별(눅 1:17)하고 있음도 알 수 있다.

 

왕상 17장에서 엘리야가 그릿 시냇가에 숨었을 때 하나님께서 까마귀를 통해 떡과 고기로 먹이셨고, 19장에 보면 엘리야 선지자가 이방 여인 이세벨의 낯을 피하여 광야로 도망하는 일이 있었고, 왕하 1장 8절에 엘리야는 털이 많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 엘리야의 심령으로 온 길 예비 사자 세례 요한도 광야에서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다고 묘사하고 있다(마 3:4).

 

이 등불 역사가 재림 때에도 나타나는 데, 7별 7금 촛대(계 1:20)의 장막성전의 역사요, 길 예비사자는 해를 입은 여자의 역사(계 12:1~6)로 나타나고, 언약의 사자는 해를 입은 여자가 하늘 장막(계 13:6)에서 낳은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계 12:5)로 나타난다. 엘리야―세례 요한의 맥을 좇아 해를 입은 여자도 7머리 10뿔 가진 용(뱀=마귀=사단)의 낯을 피하여 광야로 도망하게 되고, 그곳에서 양육을 받게 되니 하나님께서 이방의 거짓 교리로 먹이시는 것이다.

 

이는 에덴동산에서 배도한 아담에게 가죽옷을 입히셨고, 엘리야도 털이 많고 허리에 짐승의 가죽 띠(짐승의 교리=비 진리)를 띠고, 까마귀(악령을 상징)를 통해 떡과 고기(비진리)로 먹이셨고, 세례요한도 가증한 약대 털옷과 역시 가죽 띠(짐승의 교리)를 띠고 이방의 상징인 메뚜기(욜 1:4; 2:25; 나 3:17)와 석청을 먹은 것과도 맥을 같이하는 내용인 것이다. 그래서 주 재림 때 되어질 말세의 사건을 기록한 요한계시록에 이방 여인 이세벨을 빙자 비유하여(계 2:20) 바벨론 음녀를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 비판 : 여기에 비유풀이식의 성경해석이 갖는 무지와 그 폐해가 나타난다. 엘리야와 세례요한이 입은 털 옷, 가죽 옷 등을 에덴동산에서의 가죽 옷과 연관시키면서 짐승의 교리인 비진리와 연관시키는 것은 지나쳐도 너무 지나친 해석과 적용이다. 성경의 모든 표현을 비유로 보려는 저들의 관점이 이런 과도한 해석과 적용을 낳게 되는 것이다.

 

⑨ 요 14:16~2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 신천지의 주장 : 보혜사는 대언자(代言者)라는 뜻으로서(요일 2:1 대언자 혹 보혜사) 진리의 영, 대언의 영이며(계 19:10), 나아가 진리의 영, 대언의 영이 함께하는 육계의 대언자 또한 보혜사라고 할 수 있다. 초림 때는 진리의 성령이 함께 하셔서(마 3:16)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요 17:8) 대언하신(요 14:24) 예수님이 육계의 보혜사였고, 재림 때는 펴 놓인 책(진리)을 가지고 오신 천사(영)가(계 10:1~2) 사도 요한에게 와서 책을 주고 다시 예언하라고 하셨으니(계 10:11), 오늘날의 이 새 요한이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게 되는(계 1:2)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다른 보혜사인 것이다. 하나님의 것을 예수님이 증거 한 것 같이 다른 보혜사는 예수님의 것을 가지고 증거 함으로(요 16:13~15) 예수님이 보혜사요 새 요한은 다른 보혜사인 것이다.

 

△ 요점 : 초림 때와 재림 때를 대조하여 말하면서 초림 때와 연관하여서는 예수님을 분명히 말하면서도 재림 때와 연관하여서는 교주 이만희를 내세운다. 재림 때를 가리키는 요한 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에게 주신 것처럼 되어 있는 것은 인명으로 하신 비유라고 말하면서 그에 해당하는 인물이 바로 새 요한 즉 이만희라는 것이다. 요한복음에서 말하는 다른 보혜사를 새 요한과 연관시키면서 그가 바로 교주 이만희라는 것이다.

 

△ 비판 : 본문에서 말하는 다른 보혜사는 장차 오실 성령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성삼위 하나님의 제 3위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⑩ 고전 13:8~12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 신천지의 주장 : 완전한 것이 오면 초보적인 것은 끝이 나고, 온전한 것이 오면 부분적인 것은 끝이 난다. 오순절 성령의 역사 이후 오늘날까지 지속되어 온 예언과 방언과 지식은 언젠가 폐할 것에 대한 예언이다. 이 모든 것은 부분적이고 희미하여 하나님을 알아도 부분적으로 알 뿐이었지만, 온전한 것이 올 때, 얼굴과 얼굴을 볼 때는 예언이 성취됨으로 예언이 폐하여지고 실상이 나타나는 때를 말하는 것이다. 이 실상의 때가 바로 진리의 성령을 받은 다른 보혜사가 올 때요, 실상의 계시를 본 감람나무 증인이 출현한 때요, 펴 놓인 책을 받고 증거 하는 계시록의 새 요한이 출현하여 시온산 증거장막성전에서 성경 66권을 밝히 증거 하는 때이다. 초림 때 예수님이 오심으로 모든 선지자와 율법의 예언이 끝났던 것 같이(마 11:13) 그 때에는 예언도, 방언도, 부분적인 지식도 다 폐하게 된다.

 

△ 요점 : 실상이 나타나는 때 = 진리의 성령을 받은 다른 보혜사가 올 때 = 실상의 계시를 본 감람나무 증인이 출현한 때 = 펴 놓인 책을 받고 증거 하는 계시록의 새 요한이 출현하여 시온산 증거장막성전에서 성경 66권을 밝히 증거 하는 때, 곧 지금 교주 이만희가 활동하는 때라는 말이다.

 

△ 비판 : 때에 대한 관점이 다르다. 본문에서 말하는 “온전한 것이 올 때”는 그 아래 나오는 두 번의 “그 때”(then)와 연관하여 칼뱅은 고후 5:6~7과 관련지으면서 “죽음 직후”(the time immediately after death)를 가리키기보다 “마지막 날”(the last day)을 가리킨다고 하였다.

 

2) 신천지 신도에 대하여 은연중에 주장하는 내용과 그에 대한 비판

 

① 렘 3:14, 15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라 내가 너희를 성읍에서 하나와 족속 중에서 둘을 택하여 너희를 시온으로 데려오겠고 내가 또 내 마음에 합한 목자들을 너희에게 주리니 그들이 지식과 명철로 너희를 양육하리라”

 

△ 신천지의 주장 : 성경에서 약속한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약속한 성전과 또 하나는 약속한 목자이다. 본문에도 하나님께서 성읍(교회)과 족속(신자들) 중에서 하나 둘씩 택하여 시온(증거장막성전)으로 데려오고(계 14:1=15:5), 그들에게 하나님 마음에 합한 목자(초림 때는 예수님/ 재림 때는 이긴 자=새 요한)를 주어 지식과 명철로 양육한다고 하셨으니,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주 재림과 말세의 징조를 말씀하신 중에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예수님)에게 그 집(시온산 증거장막성전) 사람들(신천지 12지파 신도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예언이 성취된 때의 실상의 복음)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마 24:45)고 하신 말씀과 같고, 계시록 14장에 어린양과 함께 시온산에 모인 144000명이 6천 년간 봉해졌다가 이제 열려진 새 말씀(새 노래)으로 양육 받게 될 것을 예언한 것과도 일치하는 내용이다. 이 예레미야 3장 14~15절의 말씀이 응해지는 이 때 각 교회에서 하나 둘씩 익은 알곡들을 모아 들여 감추었던 만나요(계 2:17) 새 포도주며 새 노래인 실상의 말씀으로 양육하는 곳이 있으니 바로 시온 기독교 신학원인 것이다.

 

△ 비판 : 본문에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목자들을” 주겠다고 하시는 것은 1차적으로 유대인들이 포로 되었던 자리에서 회개한 뒤 본국으로 돌아 온 후에 있을 선한 지도자들의 인도를 가리키며, 2차적으로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신약 시대의 참된 지도자들을 가리킨다.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이 회복될 것을 말하면서 멀리 신약시대의 영적 축복을 소개한 것은 하나님 백성의 참된 회개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만 성취될 것을 내다 본 것이다.

 

② 렘 51:25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온 세계를 멸하는 멸망의 산아 보라 나는 네 원수라 나의 손을 네 위에 펴서 너를 바위에서 굴리고 너로 불 탄 산이 되게 할 것이니”

 

△ 신천지의 주장 : 비유한 산은 성읍 또는 오늘날의 교회와 같은 조직체다. 성경에서 산은 배도의 산, 멸망의 산, 구원의 산이 있다. 선민의 성읍은 시온산(성)으로 비유하고, 바벨론과 같은 이방의 성읍은 멸망의 산으로 비유한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배도한 선민 예루살렘을 심판하시는데, 이 때 심판 받는 예루살렘을 불탄 성읍이라고 비유하시고, 다음에는 선민을 삼킨 대적을 심판하시는데, 이 때 심판 받는 바벨론을 멸망의 산으로 비유하시고 불탄 산이 되게 하신다고 경고하신 말씀이다. 그 때 거기서 피하여 나온 시온의 백성들이 모여 이룬 구원의 처소가 바로 시온산이며 구원의 산인 것이다.

 

요한계시록에도 배도로 말미암아 심판 받는 불붙는 큰 산=배도의 산(계 8:8), 선민 장막을 42달 동안 사로잡고 멸망시킨 짐승의 나라 바벨론(음녀)의 7머리=7산=멸망의 산(계 17:9), 짐승과 싸워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모인 증거장막성전(계 15:2-5)=시온산(계 14:1)=구원의 산이 말세에 순리대로 나타날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다.

 

△ 비판 : 이런 논리에서 저들의 모임을 가리켜 ‘증거장막성전’이라고 일컫는 것이다. 산들을 배도의 산, 멸망의 산, 구원의 산으로 관찰한 것은 잘한 것이다. 하지만 본문에서 말하는 ‘멸망의 산’이 오늘날의 교회를 가리킨다는 말은 수긍할 수 없는 표현이다. 뿐만 아니라 구원의 산이 저들이 주장하는 대로 저들의 모임인 ‘증거장막성전’인가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본문에서 말하는 ‘멸망의 산’은 그 때 세계를 망하게 한 나라 바벨론이다. 요한계시록에서 언급된 바벨론 멸망에 대한 선언은 구약에서의 이런 말씀들을 자료로 하여 교회를 대적하는 세상의 멸망을 예고하는 것이다. 저들이 (기성)교회를 적대시하며 바벨론이라고 일컫는 것은 스스로 교회로부터 자신을 잘라내는 행위이다.

 

※ 기존의 교회 조직체를 가리켜 바벨론이라 지칭한 것은 아마 종교개혁 당시에 종교개혁자들과 과격한 열성분자들에 의하여 이미 있었던 일로 여겨진다. 당시에 타락한 가톨릭교회를 두고 바벨론으로 불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비판적 표현은 대단히 조심스러운 표현이며 교회의 표지에 대한 올바른 기준에 따른 표현이라야 한다.

 

③ 겔 31장

“열한째 해 셋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애굽의 바로 왕과 그 무리에게 이르기를 네 큰 위엄을 누구에게 비하랴……너의 영광과 위대함이 에덴의 나무들 중에서 어떤 것과 같은고 그러나 네가 에덴의 나무들과 함께 지하에 내려갈 것이요 거기에서 할례를 받지 못하고 칼에 죽임을 당한 자 가운데에 누우리라 이들은 바로와 그의 모든 군대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라”

 

△ 신천지의 주장 : 앗수르 사람을 커다란 백향목 나무로 비유하셨듯이, 다니엘 4장에도 바벨론 느브갓네살 왕을 큰 나무로 비유했음을 본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 커다란 백향목 나무가 에덴동산에 있었다는 것이다. 에스겔 28장에서 덮는 그룹이라고 한 두로 왕이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었다고 하신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것의 뿌리가 바로 에덴동산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 비밀은 요한 계시록의 음녀(바벨론)와 그가 탄바 7머리 10뿔 짐승의 비밀(계 17: 7)에서 다 드러나게 된다. 두로, 앗수르, 바벨론, 애굽을 빙자하여 비유로 장래에 나타날 사단의 나라와 그 조직체의 비밀을 감추어 놓았던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조직이 에덴동산에서 생명나무의 비밀과 예루살렘, 시온, 이스라엘을 빙자하여 비유로 간직해왔다면, 사단의 나라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비밀과 바벨론, 앗수르, 애굽 등을 빙자하여 비유로 감추어왔던 것이다.

 

한 마디로 성경은 창세기의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두 세계로 시작하여 요한계시록의 시온, 새 예루살렘, 새 이스라엘로 상징된 생명나무의 실과를 받은 참 목자인 이긴 자의 나라(신천지 증거장막성전)와 바벨론으로 상징된 음녀 거짓 목자의 나라(일반 기성교회) 두 나라를 설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으로 성경을 상고하는 모든 신앙인들은 이 두 세계를 깨닫고 분별하여 생명나무(이긴 자)의 실과(말씀=교리)를 먹어야만 영생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 비판 : 본문에서는 앗수르 왕의 위엄을 ‘레바논의 백향목’에 비유한다. 하지만 이것을 선악과와 연관시켜 해석하는 것은 비약이다. 저들의 주요 비판 타깃이 기성교회이다. 마치 종교개혁 당시에 열광주의자들이 취하였던 입장과 유사하다. 물론 기성교회가 저들을 비판하기 때문에 그럴 수는 있겠으나, 비판타깃을 기성교회로 잡지 말고 불신 이방세력으로 잡는 것이 오히려 더 타당할 것이다. 요한계시록의 시온, 새 예루살렘, 새 이스라엘로 상징된 생명나무의 실과를 받은 참 목자인 이긴 자의 나라가 바로 저들의 집단인 신천지 증거장막성전이며, 바벨론으로 상징된 음녀 거짓 목자의 나라가 일반 기성교회라고 하는 주장은 지나친 자기중심적인 주장이다.

 

④ 겔 47:1~12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내리더라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오른쪽에서 스며나오더라……그 진펄과 개펄은 되살아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 신천지의 주장 : 비유론에서 이미 배운 대로, 물은 말씀(암 8:11), 물이 흐르는 강은 전도자(요 7:38), 물의 근원인 샘이나 우물은 목자, 나무는 사람, 실과는 교리 또는 전도된 사람, 천하수(天下水/창 1:9~10)가 모여 이룬 용이 왕 노릇하는 바다(사 27:1)는 사단이 주관하는 비진리의 세상을 각각 비유한 것이다. 먼저 본문의 말씀이 이상을 통한 예언의 말씀임을 알 때, 다음과 같이 문자적으로나 육적으로 볼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예루살렘성전에서 물이 나와 동방으로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 사해 바다에 이르러 사해의 죽은 물을 살려서 고기가 살게 되고 거기서 어부가 고기를 잡는 광경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능력이면 무엇을 못 하시겠는가? 그러나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사해 바다를 살리고 고기를 잡아서 무엇 하시겠는가?

 

이는 영적 예루살렘 성전인 예수님에게서(요 2:19~21) 생명의 말씀(생수)이 나와 제자들(강)을 통해 세상(바다)으로 흘러가게 됨으로 비진리의 세상이 진리의 세상으로 변하면서(소성) 많은 사람들(나무들과 고기들)이 영적으로 살게 되고, 그 사람들을 복음으로 전도(그물로 고기를 잡듯이/ 마 4:19)하는 일이 있고, 소성함을 얻은 사람들은(생명나무) 전도를 하게 되니(열매를 맺음) 그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잎사귀)은 죽은 영혼들에게는 먹을 만한 열매와 영혼을 살리는 약재료가 된다는 말씀이다.

 

이와 같은 예언이 요한계시록 22장에도 있으니, 생명수(생명의 말씀)가 나오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는 이긴 자가 있는(계 3:12, 21) 새 예루살렘인 신천지 증거장막성전이요, 달마다 맺는 12가지 열매는 12지파에서 달마다 수료하는 신천지 신도들이며, 미혹 받은 만국을 소성하는 생명나무 잎사귀는 비진리 가운데 있는 기성교회 신자들을 전도하는 신천지 신도들의 전도의 사명을 각각 비유한 것이다.

 

△ 비판 : 구약의 예언이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되는 데는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재림의 때와 연관해서는 더 이상 예수님의 자리는 없고 오직 교주 이만희의 자리만 있을 뿐이다. 본문에 대한 해설에서도 결국 교주를 지칭하는 ‘이긴 자’가 언급되는 것이다.

 

⑤ 다니엘서

△ 신천지의 주장 : 느브갓네살 왕이 이상 가운데 본 2장의 큰 신상과 4장의 큰 나무와 다니엘이 이상 중에 본 7장의 바다에서 나오는 짐승은 모두 동일한 내용의 다른 환상으로서, 요한계시록의 7머리 10뿔 짐승과 짐승을 탄 음녀 바벨론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동일한 내용인 것이다. 이것이 바벨론, 메대 바사, 헬라, 로마 등 역사적, 육적으로 나타난 사건이라면, 2장의 큰 신상을 깨뜨리는 산에서 뜨인 돌의 실체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뜨인 돌이 이룬 태산이 하나님이 세우시는 한 나라라고 분명히 해석되어 있음을 볼 때, 이는 초림 때 예수님을 통해 선포된 천국으로 봄이 타당하며,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언제 어떻게 큰 신상의 발인 로마를 쳐서 멸했단 말인가? 예수님께서 심판하신 대상은 세상의 육적인 나라가 아닌 영적인 이방이었던 서기관과 바리새인 같은 사단의 무리들이었다.

 

비유론에서 배운 대로 나라는 교회, 왕은 목자, 백성은 신도들을 각각 비유한 것을 안다면, 구약은 육적 선민과 이방의 육적 전쟁의 역사요, 신약은 영적 선민인 진리 교회와 영적 이방인 비진리 교회의 교권과 영권을 놓고 서로의 교리를 무기삼아 싸우는 영적 전쟁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엡 6:10~17).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상과 환상적 계시를 통해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빙자하고 비유하여 초림과 재림 때의 장래사를 예언하심으로, 실상으로 나타날 때까지는 간수하고 봉함하라(단 12:4, 9)고 말씀하신 것이다.

 

만일 이것이 육적이고 세상적인 사건으로 이미 이루어진 역사적인 사실이라면 어찌 봉해졌다 할 수 있겠으며, 오늘날까지 다니엘서를 난해하다 하여 함부로 언급하지 않고 있단 말인가? 구약의 다니엘서와 짝을 이루는 신약의 요한계시록에서도 시온산의 이긴 자가 7머리와 10뿔 짐승의 나라 바벨론(음녀)을 이기고 받은 흰 돌(계 2:17/ 심판의 말씀)로 심판한 후에 시온산(증거장막성전)이 태산을 이룬다는 다니엘서의 말씀과 같이 온 세상에 창대케 될 것을 예언한 말씀이다. 이렇게 창조된 신천지 증거장막성전이 바로 말세 주 재림 때 하늘의 하나님이 세우시겠다고 약속한 하나님의 나라 12지파 영적 새 이스라엘인 것이다.

 

△ 비판 : 다니엘서에서의 장래사에 관한 예언을 일괄적으로 종말에다 집중시키는 것은 너무 일방적인 적용이다. 또한 비유론에서 말하듯이 “나라는 교회, 왕은 목자, 백성은 신도들을 각각 비유한 것”이라고 알고 획일적으로 적용하다 보면 해석과 적용에 무리가 따르게 마련이다. 무리를 해서라도 이런 해석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는 결국 ‘이긴 자’로 표현된 교주 이만희에게로 집중시키기 위함이다.

 

⑥ 호 2:16~1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그의 입에서 제거하여 다시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여 부르는 일이 없게 하리라 그 날에는 내가 그들을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하고 그들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 신천지의 주장 : 하나님께서 그날에 장가들겠다는 약속의 말씀이다. 비유론에서 영을 신랑으로, 육을 신부로, 영이 육에게 임하여 함께 하는 것을 혼인(결혼)으로 각각 비유했다. 성령이신 하나님께서 한 육체를 택하시고 함께 하실 것을, 신랑이 신부에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겠다고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다. 이 예언이 이천년 전 이루어졌으니 하나님의 성령이 예수님에게 임하신 사건이다(마 3:16).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제 이사야 62장 4절의 말씀과 같이 혼자가 아닌 하나님과 함께 하시는(요 10:30) 결혼한 여자(쁄라)가 되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셨다(헵시바). 하나님의 성령의 씨(말씀)를 받아 12아들을 낳으셨으니(고전 4:15) 12제자들이요, 이들이 영적 이스라엘 12지파의 씨가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주 재림 때는 성령이신 예수님이 신랑이 되시고 택하신 목자가 신부가 되어 함께 하시고, 약속의 목자인 새 요한에게 펴 놓인 말씀의 씨를 주어(계 10장) 영적인 12아들을 낳고 그들이 한 지파에 12,000씩 144000의 종들을 낳게 되니 이들이 바로 12지파 영적 새 이스라엘인 것이다(계 7:1~3).

 

△ 비판 : 잘못된 비유론에 근거한 논리의 비약이 보이는 전형적인 예이다. “비유론에서 영을 신랑으로, 육을 신부로, 영이 육에게 임하여 함께 하는 것을 혼인(결혼)으로” 각각 비유하였다고 하는데, 이런 전제에 심각한 문제점이 내포되어 있다. 영은 영이지 신랑이 아니며, 육은 육이지 신부가 아니다. “성령이신 하나님께서 한 육체를 택하시고 함께 하실 것을, 신랑이 신부에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겠다고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라고 했는데,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을 신랑으로 비유하시면서 선민인 이스라엘을 신부로 비유하신 것이다. 본문의 내용을 성육하신 예수님에게 성령이 임한 사건과 연관시키면서 본문의 예언이 예수님에게서 성취되었다고 하는 것은 문제가 되며, 오히려 본문은 새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종교적 관계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완전하여지며 영원하게 될 것을 약속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훨씬 더 건전할 것이다. 재림과 관계하여 말하면서 예수님은 성령으로 돌려버리고, 소위 ‘택하신 목자’를 ‘약속의 목자 새 요한’이라고 부르면서 재림주의 자리에 앉히는데 그가 바로 이만희라는 것이다.

 

⑦ 히 11:39~40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 신천지의 주장 :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된 믿음의 선진들을 설명한 끝에 이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다. 여기서 저희는 순교한 믿음의 선진들이고, 우리는 살아있는 믿음의 후손들이다. 순교자들은 육신은 잃었지만 영혼은 살았고, 우리는 육신은 살았지만 살리는 영을 잃었다. 저들은 우리의 육을 입고, 우리는 저들의 영을 덧입는다(고후 5:2~4; 고전 15:51~54). 그래서 저들도 우리의 육체가 아니면 온전함을 이루지 못한다고 한 것이다.

 

△ 비판 : 하나님께서 율법 시대의 신자들에게 주신 은혜와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의 차이에 대해서 분명히 말하는 것이라고 칼뱅은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모두 한 몸으로 결합시키려고 하셨기 때문이며,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조상들에게는 조금의 은혜만 주어서 그 완전한 성취를 우리 시대 즉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시대까지 연기하셨다는 것이다. 그들이 아직 약속된 것을 받지 못했다고 하는 구절은 그리스도에게 있어서 우리에게 선언된 최후의 성취에 관련해서 이해되어야 한다.

 

3) 부차적인 내용과 그에 대한 비판

 

① 사 34:16 “짝”

“너희는 여호와의 책에서 찾아 읽어보라 이것들 가운데서 빠진 것이 하나도 없고 제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령하셨고 그의 영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

 

△ 신천지의 주장 :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면 그 말씀들이 반드시 짝이 있다. 성경은 성경으로 풀어야 하고, 성경의 문제는 성경에 답이 있다. 구약의 짝은 신약에 있고, 사복음의 짝은 계시록에 있다. 例) 창 14장 멜기세덱=히 7장 예수 그리스도, 창 16~21장 아브라함의 두 여자=갈 4:21~24, 신 25:5 소=고전 9:9 목자, 출 34장 광채를 가린 수건=고후 3장 수건으로 가려진 구약, 출 25장 장막=히 9:9 비유, 출 14장 홍해=고전 10:2 세례, 출 16장 만나=요 6장 예수님이 산 떡, 출 17장 반석=고전 10:4

 

△ 비판 : 본문에서의 “짝”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윗 절에 언급한 내용과 연결하여 문맥 속에서 생각하면 여기서 말하는 “짝”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각양 짐승들의 “짝”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성경은 성경으로 풀어야 하며, 구약과 상응하는 신약에서의 교훈을 찾는 것이 중요하지만, 본문에서의 “짝”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② 사 46:10 “모략”

“내가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뜻/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 신천지의 주장 : 하나님께서는 세상 끝 날에 있어질 장래사를 처음부터 고하셨다고 하심같이 창세기 1장의 천지 창조부터가 바로 새 하늘 새 땅을 창조할 것에 대한 대 선언이며, 하나님도 ‘모략’을 베푸시는 분이듯이 우리도 전도할 때에 ‘모략’전도를 해야 한다. ‘모략’이 일을 몰래 꾸민다는 뜻이듯이 우리의 전도 방법도 이제는 철저히 신분을 숨기고 거짓으로 접근하여 친분을 쌓은 후 은근히 성경공부로 유도해야 한다.

 

△ 비판 : 모략(애차)counsel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전형적인 오해요, 거짓을 진리 증거의 수단으로 공공연하게 주장하는 이단적인 적용이다. ‘애차’는 하나님과 관련하여 쓰일 때에는 하나님의 뜻, 계획 같은 의미이다. 그래서 새 번역에는 하나님의 ‘뜻’으로 되어 있다.

 

2. 신천지의 주장의 요점

 

 

1) 기성교회에 대한 적대감

기성교회를 멸망할 바벨론으로 여기고 있다. 물론 교회의 부패가 극에 달했던 종교개혁 당시에 부패한 로마 가톨릭을 향하여 열광주의자들은 물론이려니와 심지어 종교개혁자들 중에서도 그렇게 표현한 적이 있다. 하지만 기성 교회를 적대시하는 이런 표현은 대단히 조심스럽게 써야 할 표현이다.

 

 

2) 비유풀이식 해석

① 인명과 지명을 빙자한 비유
성경에서의 거의 모든 표현을 비유로 여기면서 저들의 비유풀이 방식으로 해석하고 적용하려고 할 때 무리가 따른다. 실례: 말 4:5에 대한 해설에서 엘리야와 세례요한에 대한 해석

② 이중 적용
예언의 1차 적용을 넘어 2차 적용에로 나아가면서 결국에는 교주 이만희에게로 이끈다. 구약에서의 예언을 일단 예수님에게로 적용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 하지만 재림하실 예수님 혹은 그 시대에 적용해야 할 내용들에서는 예외 없이 ‘보혜사,’ ‘이긴 자,’ ‘새 요한’이란 표현으로 이만희에게로 집중시킨다.

 

3) 교주 이만희에게로 귀결

① 보혜사 : 예수께서 직접 언급하신 보혜사 성령이 바로 이만희라고 주장한다. 요 14:16-26에 대한 해설 참조.


② 재림주 : 구약에서의 메시야 예언을 예수님에게로 집중시키면서도 재림하실 예수님과 관계된 모든 것을 이만희에게로 집중시킨다. 재림과 연관하여서는 더 이상 예수님은 없다. 영으로 표현되면서 마치 이만희에게로 와서 영적으로 혼인하여 하나가 된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사 62:1~5에 대한 해설에서.


③ 이긴 자 : 요한계시록에서의 이 표현(2:7, 3:5, 21:7)을 이용하여 그 ‘이긴 자’가 바로 이만희라고 주장한다. 이사야 1:1~2:4 해설에서 실명을 거명하며 주장한다.


④ 새 요한 : 요한 계시록이 저들 교리의 주요 발판이 되는데, 요한은 비유였고(인명 혹은 인물을 통한 비유) 그 실체가 되는 인물이 바로 ‘새 요한’으로서 이만희라는 주장이다.

 

4) 선민의식
계시록에서 말하는 144000을 문자적으로 적용하여 그 실현을 기대한다. 호 2:16~19과 학 2:23 해설에서.

 

3. 맺음 말

 

아주 당돌한 이단, 교회를 자신의 일터로 여기는 신천지 이단의 성구풀이와 그 주장을 살펴보고 그에 대하여 비판하였다. 이들은 무지하여 자신도 모르는 가운데 이단적으로 주장하는 이단이 아니라, 철두철미 의도적으로 교주 이만희를 재림주로 주장하는 이단이다. 이들의 성경해석 방식의 기본이 되는 비유풀이에 대하여 바르게 비판하고, 그들이 그런 방식으로 이끄는 교주 이만희에로의 집중을 비판할 수 있어야 하겠다. 건전한 교리의 바탕 위에서 성경을 바로 읽고 깨달아 살아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