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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사역자의 필용성:“문화에 나타난 하나님의 메시지 읽는 특권 포기 말길”

맘사라 2014. 3. 28. 08:56

 

“문화에 나타난 하나님의 메시지 읽는 특권 포기 말길”

입력 : 2014.03.22 07:39   

최지호 목사의 ‘기독교인의 영화 바로보기’

 

 

▲20일 개봉한 영화 <노아>의 포스터.

올해는 최근 개봉한 <노아>에 이어, 드라마 <더 바이블>을 영화화한 <선 오브 갓>, 크리스천 베일이 모세로 출연해 출애굽 여정을 펼치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엑소더스>, 브래드 피트가 빌라도 역할을 맡은 <본디오 빌라도>,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다룬 윌 스미스 주연의 <더 리뎀션 오브 가인> 등이 잇따라 극장가를 찾을 예정입니다. 할리우드에서 전례없이 성경이 각광을 받고 있는 가운데, 찬양사역자인 최지호 선교사가 이러한 ‘기독교 영화’를 보는 관점을 제시합니다.-편집자 주

제목이 너무 거창한가? 영화 평론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영화를 자주 보는 사람도 아닌데, 무슨 기준이라도 세울 모양새라…, 사실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든다. 다만 대중문화의 시대라 일컫는 시공간 속에서 일정한 사명감이 들고, 영화 <노아>, <신이 보낸 사람> 등의 영화로 혼란을 겪는 작금의 상황 속에, 기독교 문화인으로서 약간의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글을 쓰게 되었다.

우리 시대의 영화는 가장 역동적이고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문화 형태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단언컨대 예배를 제외하면, 2-3시간 내에 가장 큰 파장과 영향을 끼치는 강력한 도구가 아닐까 싶다. 거기에 특정한 시간, 한정된 장소(영화관)라는 집중력을 발휘하고,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영화의 구조는 치명적(?)인 상황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까지 하게 만든다.

의식, 무의식 중에 전달되는 메시지의 영향력은 강조하지 않더라도 그 능력이 이미 검증되어 있다고 본다. 10-20년 전 기독교인의 기준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 나타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삶이 대중 문화가 의도하는 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따라서 순진하게 인간의 창의성에 놀라고, 사회를 밝힌 건강한 메시지를 찾아 보겠다는 기대만 갖기에는 세상이 너무 많이 변해 버렸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물론 포스트모던 시대를 지배하는 현대 문화 속에서 영화라는 장르를 하나의 범주에 가두어 두려는 것 역시 시대를 모르는, 아니 시대의 흐름에 반하는 것이라 할 수도 있겠다.

여름에는 공포물, 가을엔 멜로, 겨울에는 가족 영화 같은 기본 공식이 있는 것은 사실로 보이나, 영화는 기존의 모든 예술을 합한 ‘마지막 예술’이라는 점에서 어떻게 상호 관계를 맺으며, 또한 파괴적이기도 한지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기독교적 영화’보다, 소위 ‘기독교 영화’가 더 큰 문제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기독교 영화로 분류되면 수용성 깊은 기독교인 관객들에게 줄 수 있는 영향력이 더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말이다. 제대로 메시지를 읽을 수 있는 소양과 지식을 갖춰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왼쪽부터 노아의 방주를 소재로 한 <에반 올마이티(2007)>, 기독교적 세계관의 판타지 <나니아 연대기(2005)>, 멜 깁슨 감독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2004)>.

2004년 개봉된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The Passion of The Christ)>는 예수께서 죽으시기 전 12시간 동안을 다룬 영화로, 예수의 죽음에 대한 사실적 묘사와 반유대적 내용으로 많은 논란을 일으켰던 것을 기억한다. 거기에 독실한(?) 가톨릭 신자라는 감독 멜 깁슨은 천주교 의식과 기도, 성물들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성경 외의 내용을 첨가하는 방식으로 제작 당시부터 논란이 됐다. 막연히 그리스도 수난의 사실적 묘사만으로 열광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는 판타지 영화 <나니아 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 개봉 당시에는, 상상력을 사용하는 것에 두려움이 있는 한국교회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의 반응을 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박양식은 이에 대해 “성경의 직설적 이야기로만 복음을 전하는 것에 익숙한 한국 그리스도인에게 그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다. 복음을 그대로 전할 때 거부감 내지 적대감을 보이는 현실 속에서, 계속 성경을 통한 복음 제시만을 고집하는 것이 지혜로운지는 고민해 볼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노아를 소재로 2007년 제작된 <에반 올마이티>는 코미디 영화라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봐야 한다. 성경에 나와 있는 내용 중 하나를 그야말로 스케일 있는 할리우드 가족 코미디물로 만들면서, ‘짓다 만 듯한 방주’와 같은 느낌을 준 영화였다. 그러나 <에반 올마이티>나 <나니아 연대기> 등 성경을 소재로 하거나 기독교적 세계관을 내포한 영화들을 단순히 ‘기독교 영화’로 분류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미디어 가려 먹기’를 위한 대표적 콘텐츠로 꼽히는 영화 <선 오브 갓>과 <신이 보낸 사람>.

북한 정권의 기독교 박해를 피해 남한으로 탈북하려는 북한 지하교인들의 이야기를 담아 최근 개봉한 <신이 보낸 사람>은 일반인들에게 종교적 색채가 너무 강한 영화라는 이유로 비판을 받은 데 비해, 정작 기독교 내부에서는 이단 논쟁을 일으킬 정도의 비평이 난무하고 있다. 일부 내용 전개나 감독의 의도 등을 깊이 분석해서 반기독교적 메시지를 주고 있다고 비판하는 이도 있겠지만, 한 가지 시선만으로 영화를 옹호하거나 비난한다면 옳은 비평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영화 <노아>가 개봉하면서, 예상됐겠지만 벌써부터 영화를 반기독교 또는 비기독교로 규정하면서 “감독의 성경 해석 자유를 제한했어야…” 하는 식의 비판이 일어나고 있다. 아마 최근 대세인 판타지에다 엄청난 자본이 들어갔으니 기대가 컸던 것 같다. 그러나 실상을 보면, 기독교 영화인줄 알고 볼 일반인 또는 신자들에게 왜곡된 진리가 노출돼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모양새다. 영화가 의도된 왜곡인지, 아니면 상상력이 발휘된 해석인지 아직은 알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 속에서 긍정적 평가를 기대하기란 어려워진 듯 보인다.

영화전문 저널인 <씨네21>에서 “이십세기폭스, 기독교 영화 본격 제작”이라는 기사가 나올 정도로 오늘날에는 기독교인들을 영화관을 끌어들이려 노력하고 있다. 영화에서 ‘성경’ 또는 ‘기독교’라는 소재는, 할리우드가 상업적 목적으로 사용한지 오래된 상황이다. 매년 이러한 영화들이 12편 정도 제작되는데, 제작비 뿐 아니라 수입도 엄청나다고 한다.

이들은 잠재적 기독교 시장이 존재하고, 많은 기독교인들이 대중문화를 사악한 것이라고 여겨 극장을 찾지 않는데 착안해 기독교 교리를 담은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고 밝힐 정도다. 기독교를 시장으로 보고 있을 뿐 아니라, 막강한 기획력과 자금력이 동원되면서 이미 주도권까지 가지게 됐다.

▲영화 <노아>.

그러면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나누면서 이야기를 마치려 한다. 세 가지만 제안하겠다.

첫째, ‘관객’인 기독교인들의 영화 선택의 자유까지 빼앗지는 말자.

잠재적 관객들은 영화를 선택하는 데 있어, 먼저 영화를 관람한 사람들 중 자신과 비슷한 눈높이를 가지고 있는 관객들의 평가나 의견을 수렴하는 경향이 강하다. 따라서 영화의 영향력 자체보다, 부정적인 영화 평가를 하는 자신의 역할이 주는 영향에 대한 경계가 필요하다. 작가 또는 감독의 해석과 의도된 연출보다, 관객 스스로 영화 평가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자유와 책임을 주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의견을 밝히는 것 자체를 제한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판단의 몫을 빼앗아 버린다면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전문적 영화평론가보다는 자신에게 직접 영향을 끼치는 이들, 즉 목회자나 동료 신자들은 서로에게 위탁이 돼 있어 신뢰성이 크고, 그만큼 영화를 보는 시각에 더 큰 영향력을 갖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영화에 대한 좀더 전문적이고 다양한 시각을 제시할 수 있는 전문가로서의 자질이 준비돼 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둘째, 관객인 기독교인의 영화 해석 능력을 발전시켜 주자.

필자 역시 영화 자체가 가진 파급력, 특히 기독교 영화로 분류된 영화의 위험성을 지적하긴 했지만, 억지 악평과 호평이 아니라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 생각을 공유할 수 있기 전에는 개인적 평가의 자유를 가로막는 일에 조심성 있게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분히 보수적이고 편협한 것이라는 문제 제기에 답할 수 있도록 말이다.

우리는 기독교인으로서, 영화를 보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대중문화가 죄와 욕심으로 오염된 것은 사실이지만, 하나님을 거역하는 문화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안에는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이들의 창작열이 있고, 기독교적 메시지가 내포돼 있는 경우도 많음을 인정해야 한다. 영화를 포함해, 대중문화에 나타난 하나님의 메시지를 읽는 기쁨과 특권을 포기하지 말았으면 한다.

▲크리스천 베일이 ‘모세’로 등장하는 올해 말 개봉 예정의 출애굽 영화 <엑소더스> 중 한 장면. ⓒ영화사 제공

셋째, 관객만이 아니라 기독교인 영화 종사자가 일어나게 하자.

기독교 지도자들의 자제들 중 할리우드 영화계나 방송국으로 진출한 이들이 꽤 있다. 이들은 이 영역의 영향력을 알고 있다. 상업적으로도 괄목할 만한 성과가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우리가 비판하기에만 급급하다면 문제가 해결되지 못할 것이다. 영화계를 포함해 문화 전반에서도 구원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영화산업과 영화예술이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했다면, 저속하고 왜곡된 세계관을 주는 영화만으로 영화계가 가득 메워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상업주의에 대한 비판이나 신학적 논쟁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만큼, 우리의 자식들이라도 그 일에 종사하는 걸 격려하는 일이 필요하다.

/최지호 목사(예배예술선교사, 베네수엘라 선교사)